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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熏永久的浅笑

作者:沈熏    文章来历:本站原创    更新时刻:2017-7-3

沈熏永久的浅笑
 심훈 영원의 미소
영원의 미소
저자: 심훈

序詩

밤, 깊은 밤
바람이 뒤설레며
문풍지가 운다.

방, 텅빈 방안에는
등잔불의 기름 조는 소리뿐.

쥐가 천장을 모조리 쏘는데
어둠은 아직도 창밖을 지키고
내 마음은 무거운 근심에 짓눌려
깊이 모를 연못 속을 자맥질한다.

아아, 기나긴 겨울밤에
가늘게 떨며 흐느끼는
고달픈 영혼의 울음소리
별없는 하늘밑에 들어 줄 사람 없구나



새로 한 시, 서울의 겨울밤은 깊었다. 달도 별도 없는 음침 한 하늘 밑에 갈갈이 찢어진 거리거리는 전신줄에 목을 매 어다는 밤바람의 비명이 들릴 뿐. 더구나 북촌 일대는 기와 집 초가집 할 것 없이 새하얀 눈에 덮여 땅바닥에 납작히 얼어붙은 듯하다.

퉁의동 어구에는 초저녁부터 나어린 고구마 장수의 외치는 애처로운 목소리도 끊긴지 오래다. 그때 등불도 켜지 않은 자전거를 몰아 쏜살같이 올라오는 사람이 있다. 「잣골」

막바지까지 치닫다가 윈쪽편으로 꼬부라져서 우중충한 골목 안으로 들어가더니 어느 야트막한 들창 밑까지 와서는 성큼 뛰어 내린다.

그 사람은 방한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까만 눈동자만 흰눈에 반사되어 괴물같이 번득인다. 노동복 같은 검정 외투를 입은 작달막하게 생긴 사나이다.

그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더니 장갑 낀 주먹으로 들창문을 쾅쾅 뚜드린다. 그러나 방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다.

『김군 있나?』

자전거를 타고 온 사나이는 들창 앞으로 바짝 다가서며 굵 다란 목소리로 부른다.

『여보게 수영이 자나?』

하고 이웃집에서도 잠이 깰만큼 문을 뚜드리며 재분참 부 른다. 북악산 꼭대기에 자루를 박고 석벽을 깎으며 내려지 르는 하늬바람은 그 목소리를 휩쓸어 공중에서 맴을 돌리다 가는 흩여버린다.

『게 누구요?』

그제야 모기소리만큼 새어나오는 것은 잠에 취한 목소리 다.

『날세, 나야, 어서 좀 일어나게』

그러나 방안의 사람은 꿈속처럼 외마딧 소리로 대답은 했 어도 누가 와서 부르는지 얼핏 알아듣지를 못한 모양이다.

지금 김수영이라고 불리운 사람은 利일보사의 신문배달부 다.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수가 없어서 비록 꽁무니에 방울 을 달고 배달부 노릇은 할망정, 어떠한 사건에 앞장을 섰다 가 자유롭지 못한 곳에서 나온지도 얼마 되지 안했고 그 뒤 로는 상관도 없는 일에 꺼둘려 다니기도 한 두 번이 아니었 다. 두어달 전에도 어느날은 지금처럼 밤중에 문을 뚜드리 며 「전보 받우, 전보요」하는 소리에 (시골집에서 무슨 변 사나 나지 안했나)하고 깜짝 놀라 허겁지겁 뛰어나갔다. 그 랬더니 난데없는 자동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마음에야 있건 없건 밥벌이를 하려니 까 몸담아 있는 곳을 숨길 수도 없었다. 이래저래 지금처럼 새벽녘에 문을 뚜드리며, 친구나 찾아온 듯이 제 이름을 부 르는 소리는 그야말로 돌림병에 까마귀 소리만큼이나 듣기 싫었다.

수영이는 잠이 깨고서도 문을 열지 안했다. 목소리를 다시 징험하노라고 숨을 죽이고 들창편으로 귀를 기울였다.

창밖의 사나이는 조급한 듯이 왔다가다하다가 대문편으로 돌아가더니

『문 열게, 어서 문 좀 열어.』

목소리를 한층 더 높이며 대문짝을 발길로 걷어찬다. 왈가 닥달가닥하고 깊은 밤의 정적을 깨뜨리는 소리는 골목 안이 떠나가리만큼이나 요란스러웠다.

수영이는 며칠 전부터 감기가 들어서 그날 저녁에는 자기 가 맡은 구역에 신문을 일찌감치 돌리고 들어왔었다. 남의 집 행랑방에 삼원짜리 사글세로 들어있는 홀아비살림이라 약 한첩 달여먹을 수도 없었다. 온종일 비어두었던 온돌은 빈소방처럼 찬바람이 휘돌아 푼거리 장작 한단을 지피고는 땀이나 좀 내어볼 양으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웠었다. 눕 기는 했어도 침침한 남폿불 그림자가 아롱지는 천장에다가 부질없는 공상을 그리노라고 잠을 못이루고 고생고생하던 끝에 막 첫잠이 들었었다.

대문소리가 하도 요란히 나니까 주인집에도 미안한 생각이 나서 그는 마지못해 머리맡을 더듬어 불을 켰다. 바지춤을 추켜쥐고 일어나 들창문을 열었다. 칼끝 같은 바람이 자던 얼굴을 할퀴며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와서 진저리가 쳐졌다.

『아 이 사람아 무슨 잠이 그렇게 깊이 들었더란 말인 가?』

하며 창밖의 사람은 좀 골이 난 모양이다. 그는 한 신문사 에서 문선 직공을 다니는 서병식이었다. 그는 촌수는 멀지 만 외가편으로 친분이 되어서 수영이가 그의 집에 유숙한 일도 있었다. 나이는 병식이가 두세살이나 위지만 둘도 없 는 막역한 친구였다.

『웬일인가? 이 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그제야 수영이는 안심하고 입을 열었다. 병식이는 언발 녹 이노라고 선자리에서 체조하듯이 발을 구르면서

『신문사에서 시방 호외를 낸다구 야단법석일세, 벌써 여 판을 떠 넘겼는데 배달이 몇이나 모였어야지. 자네가 이리 루 떠나온 걸 아는 사람이 없기에 내가 통지를 하러 왔 네.』

『호외? 호외는 또 무슨 호왼구.』

『아마 ○○사건이 풀렸나보데.』

그 말을 듣자 수영의 양미간에는 금시 내천(川)자가 씌어졌 다. ○○사건이란 바로 자기 자신이 관계했던 사건이기 때 문이다.

『추운데 미안허이. 곧 나감세.』

수영은 문을 닫고 앉으며 남폿불을 돋우었다. 허우데가 크 지는 못하나 중키는 확실하고 어깨가 벌고 가슴이 봉긋이 내어민 폼이 책상물림 같지는 않다. 콧날이 서서 성미가 좀 까다로울상 싶으나 눈이 크고 어글어글해서 성격의 조화(調 和)를 시킨다. 입술은 좀 두툼한 편인데 인중이 길어서 한번 입을 다물면 좀체로 말이 샐 것 같지 않다. 수영의 인상을 통틀어 말한다면 이렇다할 두드러진 특징은 없으나 누가 보 든지 순박하고 건실한 시골서 자라난 청년의 모습이다. 다 만 스물 네댓살쯤 된 젊은 사람으로 이마와 눈가에 잦다랗 게 주름살이 잡힌 것은 어려서부터 고생살이에 찌들은 표적 일 것이다.

수영은 푸수수하게 일어선 머리털을 손가락으로 빗어넘기 고 은을 쓴 뒤에 신문사 마크를 새긴 하삐를 걸치고 불을 입으로 불어서 끄고 나왔다. 대문 밖에서 양말을 끌어올려 감발을 하면서

『자넨 먼저 타고 가게.』하고 달음질할 차비를 차렸다.

『그럼 곧 따라오게. 얘기는 이따 만나서 험세.』

자전거는 병식의 대답을 싣고 달려갔다.

수영은 가뜩이나 몸이 찌뿌드한데다가 밤바람이 목덜미와 소맷속으로 스며들어 졸지에 전신이 으스스해졌다. 그는 신 문배달부의 독특한 걸음걸이로 한달음에 뛰어 큰길로 나갔 다. 숨이 턱에 닿아서 신문사 근처까지 오니까 윗층에는 불 이 환하게 커졌고 윤전기가 돌기 시작하느라고 천둥이 몰아 드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수영은(과히 늦지는 않았군) 하고 판매소로 들어갔다. 그는 난로앞에 걸터앉은 배달감독에게

『인제야 통지를 받았어요.』

하고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인사를 간단히 하였다. 다른 배달부들은 벌써 방울 소리를 요란히 내어 쥐죽은 듯한 거 리의 밤을 깨뜨리며 뛰어 나간다. 수영은 난로에 몸을 녹일 사이도 없이 기계실로 들어갔다. 금방 박혀나와서 석유냄새 가 확 끼치는 호외 한 장을 집어들고 급히 눈을 달렸다.

호외를 뚫어지도록 들여다보던 수영은 졸지에 흥분이 되어 서 얼었던 얼굴이 귀밑까지 화끈하고 달았다. 잠을 못자서 뻑뻑한 눈에는 핏줄이 가로 질리고 숨까지 가빠졌다.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호외의 내용을 들여다보고 섰자 니, 여러 가지 가슴 쓰라린 추억의 토막토막이 끊어지려는 활동사진의 필름처럼 머릿속을 휙휙 달렸다. 곁에서 속력을 다해 돌아가는 윤전기의 요란한 소리도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이건 무슨 생각을 허느라구 얼빠진 사람처럼 섰는거야?

○○일보두 지금 나온다는데』

수영의 어깨를 탁 치며 투덜대는 사람은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배달감독이다. 해장술이 얼큰히 취해서 술냄새가 훅 끼쳤다.

수영은 뒤숭숭한 꿈속에서 소스라쳐 깬 듯이 깜짝 놀랐다.

살을 에어내는 듯한 찬바람에 코털이 얼어붙건만 추운 줄도 모르는 듯, 자기의 배달구역인 서대문 밖으로 나서서 행촌 동(杏村洞) 현저동(峴底洞) 마루터기로 올라갔다. 산비탈에 판잣집이 닥지닥지 달라붙은 좁다란 골목을 아로새기며 대 문틈으로 혹은 담너머로 호외를 집어넣었다. 꽁무니에서 딸 랑거리는 방울소리와 함께 기계적으로 달음질은 하면서도 마음의 흥분은 그저 가라앉지 않았다.

인왕산 골짜기로 피어 오르는 뽀얀 밤안개 속에, 눈을 뒤 집어 쓰고 너부죽이 엎드린 것은 서대문 형무소다. 성벽처 럼 둘러싼 드높은 벽돌담, 죽음의 신호탑(信號塔)인 듯 우뚝 솟은 굴뚝! 수영은 발을 멈추고 서서 숨을 후유하고 길게 내뿜었다. 한참이나 박아놓은 듯이 섰던 수영의 눈에는 눈 물이 핑그르 돌았다. 그 눈물 방울은 금시 고드름이 되어 눈썹에 매어달리는 것 같다. 이 추운 겨울 밤에 다리에서 자가픔이 나도록 뛰어다녀야만하는 제 신세가 새삼스러이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 하루 밥 세끼를 얻어 먹기가 이다지도 구차하단 말 이냐?』

하고 한숨을 내뿜었다. 그러나 실상 수영의 눈에 눈물까지 맺게 한 것은 아직도 고생을 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대한 미 안한 생각 때문이다. 수영의 눈앞으로는 물에 빠져 죽은 시 체와 같이 살이 뿌옇게 부풀은 어느 친구의 얼굴이 붕굿이 떠오른다. 그 얼굴이 저를 비웃는 듯이 히쭉히쭉 웃기도 하 고 그런 얼굴이 금시 백이 되고 천이 되어 일제히 눈을 흡 뜨고 앞으로 왈칵 달려들기도 한다. 생각만해도 마음괴로운 이얼굴 저얼굴이 감옥의 하늘을 온통 뒤덮었다가는 또 다시 안개 속으로 뿌우옇게 사라지곤 한다. 그 중에는 그곳에서 죽어나온 어느 친구의 얼굴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수영은 얼굴을 홱 돌리며 호외 한 장으로 코를 힝 푼 뒤에 송월동(松月洞)으로 성을 끼고 내려갔다. 방울은 떼어 하삐 속에 넣고 맥이 풀린 걸음걸이로 내려오려니 등 뒤에서 첫 닭 우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무슨 닭이 벌써 우나?』

하고 수영은 발길을 평동(平洞) 편으로 돌렸다.

어느틈에 잿빛 하늘에서는 떡가루 같은 눈이 체로 거르는 것처럼 내리기 시작한다. 가루눈에 섞여서 매화송이 만큼씩 눈송이가 휘날리다가는 수영의 모자와 어깨위에 사뿐사뿐 내려앉는다. 수영은 옷깃을 세우고 추녀 밑으로 붙어서 걸 으려니까 마침 순대를 파는 술에서는 술국이 끓어서 외등으 로 더운 김이 무럭무럭 서리어 올라간다. 소뼉다귀를 삶는 구수한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든다. 수영은 뜨끈한 술국이라 도 한뚝배기 후룩 마셨으면 몸이 한결 풀릴 것 같았다. 그 러나 수영의 주머니 속은 뒤집어 털어도 먼지 밖에 나올 것 이 없었다. 그는 술값 외상이나 진 사람처럼 고개를 수그리 고 술집 앞을 지나갔다.

그에게는 먹는 것보다도, 시간을 버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볼 일이 있었다. 그것은 나머지 호외 한 장을 그 근처에 있 는 어느 여자의 집에 전하는 것이다. 수영은 생후 처음으로 교제한 그 여자에게 신문도 매일 넣어 주었다.

그 여자가 사숙하고 있는 집은 술집과 맞은편 골목 안인데 길거리로 들창이 뚫린 사랑채가 그가 거처하는 방이다. 수 영은 발자국소리도 내지 않고 그 돌창밑까지 왔다. 호외를 접어서 쪽문 사이로 넣으려다 말고 멈칫하고 물러섰다. 그 는 다시 들창 앞으로 다가서며 귀를 기울였다. 지금은 기나 긴 겨울밤도 지새려는 때다. 여자가 쓰는 단간방의 전등불 은 으스름하게 가려졌는데 더군다나 그 방속에서 사나이의 굵은 목소리가 두런두런 새어나온다. 수영의 전신의 신경은 온통 고막(鼓膜)으로 쏠렸다. 수영은 몇번이나 제 귀를 의심 하였다. 그러나 방속의 나직나직한 속삭임이 얇다란 들창의 백지한 겉장을 격하여 들리는 것은 분명히 남자의 목소리 다. 수영은

(하룻밤 사이에 이사를 가고 다른 사람이 와서 들었을리도 없는데……)

하고 억지로 마음을 누르면서 그대로 돌아서려 했으나 걷 잡을 수 없는 호기심이 뒷덜미를 끌어당겼다.

(아니다. 내가 오해다. 그는 밤중에 저 혼자 쓰는 방으로 사나이를 불러들일 여자가 아니다)

하고 억지로 머리를 저어도 보았지만, 제 귀로 똑똑히 들 리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번에는 으흠으흠 하는 남 자의 기침소리까지 울려나왔다. 수영은

(어쨌든지 똑똑히 알고나 말리라)

하고 도둑질이나 하러 들어가는 사람처럼 한길을 휘휘 둘 러보고는 대문 곁의 쓰레기통으로 발돋움을 하고 올라서, 벽에다가 몸을 바싹 대고 방안의 동정을 살폈다. 방속이 깊 고 바람소리에 말허리가 잘려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이번 에는 조금 새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말수효가 많고 여자의 대답이 간간이, 또는 여무지게 들리는 것을 보 아 사나이는 무엇을 추근추근히 졸라대는 눈치요, 여자는 마지못해 서너마디에 한마디쯤 대꾸를 하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다. 그때 골목밖에서 발을 탁탁 구르는 소리와 기침소 리가 들렸다. 수영은 질겁을 해서 쓰레기통 위에서 껑충 뛰 어 내렸다. 그것은 뚝배기를 끼고 술집으로 들어가는 영감 장이가 버선 등의 눈을 터는 소리였다. 수영은 뛰어내리자 정신이 아뜩하였다. 뇌빈혈로 쓰러지는 순간처럼 머리속에 서 팽이를 돌리는 것 같았다. 그는 정신을 수습하느라고 곁 에 선 전봇대를 붙잡은채 한참동안이나 넋을 잃고 서 있었 다.

…지금 어느 남자와 밤을 새우는 여자, 수영이가 생후 처 음으로 사귀었다는 여성은 이름을 최계숙(崔桂淑)이라고 부 른다. 요사히 그는 신여성들 사이에, 또는 젊은 학생들 사이 에 누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여자다. 그가 누구의 입에나 오르고 내리게된 이유는 대강 이러하다. 최 계숙이가 인물이 뛰어나게 잘난 까닭일까? 실상 계숙은 미 인이라느니보다 함박꽃처럼 탐스럽게 생긴 여자다. 이목구 비가 좀 생이별같이 옹기종기 달라붙고 머리 뒤가 핥아 논 것처럼 함치르르하고 몸집이 앙바름해서 씨암탉 걸음을 걷 는 서울여자와는 정반대다. 관북의 태생이라, 손발이 좀 큰 대신에 살이 희고 목이 상큼하게 패이고 허리가 날씬한데다 가 종아리가 깍아세운 것처럼 길고 매끈해서, 뒤꿈치 높은 구두를 신으면 서양여자와 분간을 할 수 없을만큼 각선미 (脚線美)를 가지고 있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몽상하는 육체의 조건이 선천적으로 구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은행 껍질같이 쌍거풀이 진 눈꼬리가 조금 치켜 붙고 콧마루가 오뚝하여서 성품이 좀 날카로와 보이는 것도, 관북 여자의 특징일 듯, 촬영감독이 보았으면 탐을 내리만큼 영화배우의 소질을 풍부히 가진, 그야말로 모던걸의 타입이다. 그러나 계숙이가 거의 사회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그의 외 모에만 달린 것이 아니었다.

계숙은 긍 다시에 어느 사립어학교의 학생이었다. 하루 아 침에 일이 일어나자 그는 팔을 걷고 가두(街頭)로 나서서 각 여학교와 연락을 취하고 남자도 따를 수 없을 만큼 민첩하 게 활동을 하다가 육체의 자유를 잃은 몸이 되었다.

그 뒤에 감옥으로 넘어가서 여러달 동안 고초를 겪다가 나 왔기 때문에 여류 투사로서 경향에 이름이 났다. 그때에 각 민간신문에서는 최계숙의 사진을 이단으로 커다랗게 내고 약력까지 실었다. 그래서 남녀를 물론하고 그 당시에 학생 들은 신문을 펴들고

『에에키 조선의 짠다아크가 났군.』

하고 빈정거리기도 하고

『아니야, 로오자 룩센부룩을 외딴치겠는 걸.』

하고는 제멋대로 품평하듯 하며 지껄였다. 그러자 최계숙 이는 벌써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하나도 아니요 둘이나 된다. 삼각연애가 얼크러져서 죽을둥 살둥 하는 판이란다─ 이제나 저제나 남의 말에는, 더군다나 젊은 여자의 일이라 면 머리를 싸매고 덤비는 축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런 소문 이 옮아 다니는 동안에 「최계숙」이란 이름이 슬그머니 유 명해졌던 것이다.

수영이가 계숙을 알게 된 동기는 그 사건 때문이었다. 쥐 도 새도 모르게 일을 꾸밀 때에 수영은 서병식의 소개로(병 식은 등뒤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고 활자로 박힌 것은 그의 손으로 된 것이었다) 利여자학교의 학생 대표인 계숙을 처 음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계숙은 병식이가 동경서 고학을 할 때 자취생활을 하던 둘도 없는 동지 최용준(崔容俊)의 누 이동생이었는데, 그 친구가 폣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는 피차에 고독한 처지라 의남매를 맺고 지내왔다. 수영은 병 식이가 계숙이란 여자와 가까이 교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여 러번 들었고, 두 사람의 관계도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기숙 사 생활을 하던 터이라 공교히 만나볼 기회가 없었다.

청량리(淸凉里) 전차 종점에서 만나보라는 것이 병식의 비 밀한 지령이었다. 수영은 약속받은 시간보다 삼십분이나 일 찍이 나갔다. 난생 처음으로 눈 앞에 나타날 여자를 그리어 보면서, 또는 일종의 호기심을 가지고 오분 십분을 기다렸 다. 사람의 눈을 피하여 사랑하는 사람이나 기다리는 것처 럼 야릇하게 흥분이 되어서 전차가 하나 둘 다녀가는 동안 이 퍽이나 지루하였다.

초겨울의 황혼 때라 날씨가 쌀쌀하여서 수영은 모교 교복 에 기다란 만또를 두르고 나왔다. 그는 기다리기가 무료해 서 구둣부리로 길바닥의 조약돌을 걷어차기도 하고 휘파람 도 불면서 왔다갔다 하려니까, 네 번째 나오는 전차가 종점 에 와 닿자 채 정거도 하기 전에 한사람의 여학생이 선뜻 뛰어내렸다. 그 여자가 바로 계숙이었다. 그는 검정 두루마 기를 짤막하게 입고 미색 목도리 한자락을 등뒤로 멋지게 넘겼다. 계숙은 내려서면서 왼편 소매를 들추어 팔뚝시계를 보고는 시선을 사방으로 두른다. 부탁받은 남자를 찾는 눈 치다. 두사람의 눈은 마주쳤다. 마침 그 근처에는 문안에서 나무를 팔고 방울소마를 딸랑거리면서 빈 길리만 지고 나가 는 소 한 마리 밖에 없었다.

계숙은 앞에 사람이 없는 것을 살핀 뒤에야 길찍한 다리를 활발하게 떼어놓으며 수영을 향하여 다가온다. 수영이도 (저사람이 틀림없으리라)하고 마중하는 의미로 몇 걸음 앞 을 질러 걸어왔다.

잎사귀는 다 떨어지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버드나무 그 늘로 걸어갔다. 얼마 안가자 등뒤까지 여자의 구둣소리가 따라왔다. 이윽고 두사람은 돌아보지 않고 곁눈으로도 보이 리만큼 거리가 가까워졌다. 수영은 무어라고 말을 붙여야 좋을까 하고 망설이는 판에

『김수영씨십니까?』

하고 여자편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계숙은 수영이와 반대 편으로 반쯤 얼굴을 돌리고 혼잣말처럼 물었다. 혹시 등뒤 에서 주목하는 사람이나 있지 않은가 하고 조심스러웠던 것 이다.

『네 그렇습니다.』

수영은 나직이 대답을 던졌다.

『저리로 걸어가시지요.』

여자는 여전히 딴전을 붙이듯 하며 앞을 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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韩国诗人兼导演沈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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