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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熏不死鸟第 2 页

作者:沈熏    文章来历:本站原创    更新时刻:2017-7-3

 

"남의 수양딸로 보내시거나 후취로 들여보내셨으면 도액이 되어 관계치 아니하겠습니다. 아기 본래 타고난 수는 팔십 에 퇴를 달 터인데 중간에 잠깐 액운이 있어 그러하니까 그 도액만 하면 아무 걱정 없을 터이니 염려 말으십시오."

임씨가 돈 이십 전을 내어 그 마누라를 주며,

"이것이 변변치 않으나 담배값에나 보태어 쓰시오."

"에그, 천만 의외올시다. 제가 어디 생애로 다닙니까" 에그, 아씨를 처음 뵈와도 일상 뵈옵던 양반처럼 반가우셔. 그러 나 제 말씀을 귀밖으로 대면한 적이 없더니, 오늘 그 마누라의 말을 들으니까 지 나간 일이 꼭 꼭 맞으니, 관상이 아주 헛된 것은 아닌 데‥‥. 그 마누라 말대로 남의 수양딸로 주자니 내가 허수 하여 못견딜 뿐 아니라 어머님께서 내어놓으실 리가 만무하 고, 남의 후취로 주자니 이미 혼인을 정하였는데 변통할 수 있나‥‥. 어좌어우간 이따 어머니께서 기침하시면 이런 말 씀을 여쭙고 의논을 하여보겠다) 거미기에 장씨노인이 잠을 다 자고 일어나서 닫은 미닫이 를 열고 내다보며,

"어, 내가 잠을 많이 잤구나. 해가 벌써 승석때나 되었구 나."

임씨가 분주히 안방으로 건너가 자기 시어머니 앞에 가앉 으며,

"어머님, 무엇 좀 잡수셔요, 시장하실 걸요."

"먹기는 무엇을 먹어" 오래지 아니하여 저녁밥이 될 터인 데."

"그러나 저는 오늘 우스운 일을 보았습니다."

"무슨 우스운 일을 보았는데?"

"아까 어머님 주무실 때에 웬 늙은 마누라 하나이 들어오 더니, 연희란 년 머리 빗기는 것을 여겨보더니 관상을 보는 체하기에, 제가 실없이 연희를 가리키며, 이 애 남매가 우애 나 있게 지내겠느냐 물었더니, 에그, 그런 것은 처음 보았습 니다. 그 말을 듣더니 그 마누라가 웃으며 번연히 아기가 독신인 줄 아는데 왜 속이느냐고 말을 하며, 몇 살에는 아 들을 낳고, 몇 살에는 딸을 낳아 삼사 형제를 낳기는 했으 나, 어느 해에 잃고 어느 해에 잃어서, 외딸 둘 팔자가 얼굴 에 나타났다고 눈으로 본 듯이 말을 해요."

"그래, 또 다른 말도 하더냐?"

"하도 신통하기에 과연 그러하노라 바로 말을 하고, 연희의 전정을 물어보았더니 아주 아니 들으니만 못해요."

"왜 무슨 괴악한 소리를 하더냐?"

"별로 괴악하달 것은 없어도 그 마누라 말이, 연희의 상이 복록이 가득하고 타고난 수는 팔십에 퇴를 달겠으나, 중간 에 살 격이 있어 그 살을 풀지를 아니하면 수에 대단히 방 해가 되겠은즉, 도액하기 위하여 연희를 남의 수양녀를 주 어 얼마간 떠나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후취로 시집을 보내 라 하여요."

"그까짓것들이 무엇을 안더더냐" 지나간 일은 여간 알아맞 히어도 오는 일은 별로 모르느니라."

"저도 그런 줄로 알기는 합니다마는 그 소리를 들으니까 마음에 꺼림하여요."

"내 마음도 그렇기 하다마는, 그것을 잠시인들 앞에 떠나 남의 수양딸로 줄 수가 있느냐" 정해논 혼인을 파의하고 다 른 데 후취로 줄 수가 있느냐" 아무래도 사세 부득의 일을 근심하여 쓸 데가 무엇이냐!"

그날왔던 마누라는 제가 <마의상서>나 <희이전서>를 공부 하여 관상한 것도 아니오, 특별한 의사 한 가지로 도처마다 영험하다는 말을 듣고 다니며 전곡 간 적지 아니 벌어들여 태평 생활을 하는 혹세무민의 무리이니, 기의사는 별것이 아니라 아무리 생면부지 모르는 집이라도 들어가려면 먼저 그 근동 사람에게 그 집 내용을 일일이 채문하여 자세 듣고 서야 들어가 능청스럽게 지껄여, 지각없는 부녀들로 고혹하 게 함이러니, 그날 궐녀가 마침 다방골로 지나다가 서주사 의 집에를 들어가 속여볼 작정으로 이웃 행랑것들에게 제가 서주사를 친한 듯이 슬슬 말끝을 내어, 서주사가 무남독녀 를 두었는데 지금 집에 없고, 다만 여편네들만 있다는 말을 역력히 알고 들어가, 그 모양으로 수작을 하여 두 부인의 마음을 현란케 하여놓은 것이라. 때는 정히 가을이 점점 깊 어서 팔월 중순경이라. 일기내 시한 더위에 들볶이던 사람 들이 중병이나 나은 듯이 시원 상쾌하고 몸이 가뜬하여 마 음에 날아갈 듯싶어, 혹 친구를 작반하여 각처 유희장에 구 경도 가고, 혹사 집에서는 아무 흥이 없어 중문을 적히 닫 고 시어머니 며느리도 연희를 앞에 앉히고 탄식하는 말이 라.

"어머님, 오늘이 벌써 팔월 열나흗날이올시다. 그저 저년의 아비가 있었더면 송편이나 좀 하여 먹을걸. 명절이 와도 명 절이 온지 만지, 남들처럼 시원하게 문박으로 공원으로 구 경이나 좀 다녓으면 좋겠습니다."

"글쎄로다. 추석 명일이 내일인데 오려 송편도 못해 먹고 남들과 같이 산보도 못하고, 사는 재미라고는 반점도 없구 나."

연희가 그 말깃을 달아,

"에그, 참, 할머니, 송편 좀 먹었으면."

"에이, 지각없는 것 같으니. 그러지 않아도 할머니께서 근 심을 하시는데,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서주사의 집 안방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김의관집에서 들 은 것같이, 계집하인이 붉은 칠 목판에 노란 종이를 덮어 이고 들어오더니, 그 목판을 내려 마룻전에 다 놓으며 전갈 한 마디를 정이 뚝뚝 듣게 한다.

"마님 안녕합시오" 아씨 안녕합시오" 작은아씨 안녕합시오"

댁 마님께서요, 문안 아옵고자 합니다 하고, 이동안 거느리 시고 기운 안녕하십니까 하고, 그동안 또 부산 편지나 종종 보셨습니까 하고, 이것이 많지 못하고 맛이 없으나 섭섭하 기에 보내오니 잡수어 보십사 하고요."

장씨가 내다보며,

"그것은 무엇인데 저렇게 많이 보내셨니?"

"고사떡이야요. 어저께가 무오일이라고 고사를 지내셨답니 다."

"이애, 며느라, 저것 받아라."

임씨가 마루로 나아와 찬장 우이에 얹힌 빈 목판을 내려 행주질을 정히 하더니 그 떡을 옮기어담으며,

"웬 것을 이리 많이 보내셨을까" 제일 우리 작은아씨 짜리 가 잘 먹겠구먼."

하며 방으로 들어와 돈 십 전을 내어 떡 담았던 목판에다 놓아주며 답 전갈을 한다.

"문안 아옵고자 합니다 하고, 궁금하던 차 하인을 부리셔서 댁내 안녕하신 문안 듣잡고 마음에 든든히 지냅니다 여쭙 고, 부산 소식은 종종 듣사오나 아직 오실 기망이 없사와 답답하오이다 하고, 고사떡은 웬걸 이다지 많이 보내셔서 입맛없던 차 잘 먹겠읍니다고 여쭈어라."

그 하인이 막 나아가자 웬 하인이 대문 밖에서 소리를 질 러서,

"한님, 한님."

임씨가 행랑을 향하여,

"어멈, 행랑에 있나" 댁에 누가 왔나 보이. 좀 내다보게."

행랑에서 아무 대답이 없으니, 김의관 하인이 가다가 돌쳐 서서 한님 부르는 자를 향하여,

"여보, 어디서 왔소?"

그 자가 짚신 감발에 괴나리 봇짐을 걸메고 대 지팡이를 비스듬히 짚고 서서,

"예, 나는 부산에서 올라왔소. 이 댁이 서주사 댁이지요?"

계집하인이 부산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제 마음에도 반갑 게 여겨,

"예, 그댁이 서주사댁이요. 편지 가지고 왔소" 편지가 있거 든 이리 주오. 내가 들여다 드릴 것이니."

그 자가 봇짐을 벗어 끄르더니 큼직한 편지 한 봉을 내어 주며,

"엣소, 들여다 드리시오. 내가 서울 볼일이 있어 올라오는 데 서주사 나으리께서 이 편지를 주시며 부디 댁을 찾아 전 하고 답장을 받아달라고 하십디다. 내가 내일 모레 떠날 때 에 또 올 것이니 편지 답장을 써두었다가 주십사고 여쭈시 오."

계집하인이 편지를 받아들고 서주사 집으로 다시 들어가 임씨에게 드리며 그 자의 하던 말을 전하더니 임씨 앞에가 가까이 앉으며,

"아씨, 편지를 어서 떼어 보십시오, 언제나 올라오시겠다고 하셨나. 댁 영감께서 날마다 궁금해 하시는데, 말씀을 가서 여쭙겠습니다."

임씨가 그 대답을 할 겨를없이 자기 시어머니 앞에 가 편 지를 떼어 보는데, 그 편지가 겉봉은 하나라도 그 속에는 석 장을 각각 봉하여 넣었으니, 하나는 피봉에

「어머니 전 상서 부산 객중 자 상서」

라 하였고, 또 한 장에는 피봉에,

「월방 시중 즉납 부산 객중 상장」

이라 하였고 또 한 장에는 피봉에,

「연회 보아라, 부산 객중 평서」

라 하였는데, 게 식구가 다 각기 펴들고 보는데, 김의관의 집 하인이 무슨 재미있는 말이나 얻어들으면 저의 댁에 가 고하려고 귀를 기울이고 앉았는데, 그 편지에 무슨 말이 있 는지 장씨와 임씨가 처음에는 커닿게 보다가 점점 음성이 입속으로 들어가며 아무 소리 없이 속으로만 내려보더니 장 씨가 그 며느리더러,

"이애, 편지 좀 보아라."

임씨가 그 편지를 받아보더니, 자기에게 온 편지를 장씨에 게 드리며,

"어머님, 제게 온 편지도 이러하와요. 좀 보십시오."

장씨가 그 편지를 받으며 자기 며느리를 향하여 은근히 눈 짓을 하니, 임씨가 아무말 없이 편지를 둘둘 말아 한편 손 에다 움켜쥐고,

"행랑 어멈은 어디를 가고 없노" 저애가 마침 아니왔더면 편지를 누가 받아들일 뻔하였어?"

김의관 집 하인이 내려놓았던 목판을 다시 집어 이며,

"편지에 무슨 말씀이 계셔요" 나으리께서 언제나 행차하신 답니까?"

임씨는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아직 언제 오실지 모른단다."

"에그, 그렇게 못 오셔서 작은아씨 혼인은 언제나 합니까"

어서 혼인을 지내셔야 쇤네들도 떡을 얻어먹을 터인데."

하며 연희를 돌아보며,

"작은아씨, 그렇지 않으오?"

그 하인이 하직을 다시 하고 저의 댁으로 돌아와 오씨 부 인에게 답 전갈을 고한 후

"아씨 시댁에는 그 댁 나으리 편지가 왔어요."

"응, 편지가 왔어" 그 댁 나으리께서 언제나 오신다고 하셨 다디?"

"그러지 않아도 쇤네가 여쭈어 보니까 그 댁 마님 말씀이 언제 오실는지 모르시겠다고요."

"그래서 어떻게 한단 말이냐" 그 양반이 어서 올라오셔야 도령님 혼인을 지낼 터인데."

"글쎄올시다. 다른 댁 같으면 벌써 혼인을 하셔서 재미를 적지아니 보셨을 터인데, 도령님 나이 어려서 장가를 이때 까지 아니 들여요" 그 댁에서는 혼인 지낼일 생각은 도무지 아니하시고 편지를 보시더니 무슨 말씀이 있는지, 마님아씨 께서 은근히 눈짓을 하시며 가만가만히 편지를 보시던데요.

에그, 이상야릇도 해라."

"오냐, 요란스럽다. 설마 올해 안으로야 그 양반이 올라오 셔서 성례를 시키시겠지."

"그 나으리 올라오시기 기다리다가 우리 댁 도령님은 노총 각이 되시겠네."

이와 같이 김의관집에서는 조급히 여기는데, 서주사집에서 는 혼인 일사에 대하여 한 가지 큰 문제가 생겼더라. 그 문 제는 별문제가 아니라 그날 김의관집 하인이 받아 들여온 편지는 곧 그 혼인을 파의 하자는 것이라. 그 사연에,

"연희의 혼인은 그다지 급치 않은 것을 일시 무심중에 김 의관의 아들과 정혼을 하였더니, 지금 아무리 생각하여도 영록이라는 아이가 외화는 번번하나 기실은 허화로 생기어 제 수에 극히 해롭고, 또는 그 부모가 모두 완고되어 며느 리를 신식으로 활동치 못하게 하고, 매사에 그곡을 심히 하 여 고생을 막심히 시키기가 십상팔구오니 비록 주단 거래는 하였으나 아직 결혼을 아니하였은즉, 구태여 고집 불통할 필요가 없은즉 진시 변통을 하는 것이 가하오며, 또는 신랑 의 연기가 신부보다 오륙 년 손위가 되어야 생육에도 합당 하고 정도에도 적당하므로 현시 문명한 내지인들은 으레 신 랑의 연기가 신부보다 오륙년 이상 되는 것을 취하느니, 이 리 생각하오나 저리 생각하오나 영록과 결혼하는 것은 만만 불가하온중, 황서방 공삼은 연기도 적당하고 위인도 현안하 고 경력을 많이 하여 더 위논할 여부 없이 극가 극가한 터 이오며, 우중지 일찍이 재물을 치패하였다가 다시 경제를 극히 하여 점점 부요하여간즉 황씨의 집은 즉 늘어가는 터 이요, 김씨의 집은 즉 삭아가는 터이라. 그러한 중 황공삼이 가 그 동안 상처를 하고 결심하기를, 이왕 낭패한 재산을 회복키 전에는 속현을 아니하리라 하였더니, 지금 와서는 저축한 재산이 오히려 본래 있던 것보다 갑절이나 될 지경 이므로 방장 혼처를 구하는 터인즉, 내 생각에는 그같이 합 당한 혼처를 내놓기가 아까운즉 부재다언하옵고 퇴혼하는 뜻으로 김의관 집에 말을 보내옵소서."

장씨에게와 임씨에게 온 편지가 인사만 다를 뿐이지 사연 은 일반이라. 김의관집 하인 나아간 뒤에 시어머니와 며느 리가 의논이 분분하더라.

"어머님,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읍니까" 저 집에서는 아직 성례만 아니하였다 뿐이지 아주 새 사돈집으로 여기는데 무 슨 핑계로 퇴혼을 합니까?"

"이애, 그렇지마는 당장 핑계하기가 어렵다고 퇴혼을 아니 하고 그대로 두는 수가 있느냐" 그러지 않아도 아까 네 이 야기를 듣고 마음에 꺼림하여 먼저 편지로라도 애 아비와 의논을 하여보자 하였더니, 제 생각이 먼저 이렇게 드는 것 이 신기한 일인데, 무슨 자저를 한단 말이냐?"

"그야 누가 모릅니까마는 그렇게 탐탁히 정한 혼인을 지금 와서 무엇이라고 말을 할 것이 없어 근심이 되어 그럽니다."

"오냐, 그는 걱정 말아라. 내가 망령 삼아 생떼를 쓰겠다."

하고 방장 행랑 마누라를 불러 그 말을 김의관 집에 가도 록 이르려는데, 연희가 저의 아버지에게서 온 편지를 이리 저리 보고 또 보며,

"할머니, 그까짓 흑세무민하는 관상쟁이년이 무엇을 안다고 그리하세요?"

"오냐, 너는 참섭할 일이 아니다. 어른이 어떻게 하든지 가 만히 있거라."

"또 이번에 온 편지는 모두 아버지가 보내신 것이 아니어 요."

"이애야, 번연히 네 아비 친필을 보며 그런 말을 한단 말이 냐" 듣기 싫다. 저리 가거라."

임씨가 화를 버럭 내며 이 편지 저 편지 주엄주엄 집어 연 희 턱 밑에다 들이대며,

"이 소견없는 것아, 눈깔로 똑똑히 자세 좀 보아라. 아버지 친필이 아닌가."

"필적은 아무리 방불하여도 아버지 편지는 아니야요."

"그것은 어찌해서 그렇단 말이냐" 시원히 말을 해라."

"아버지께서 매사에 신의가 있기로 명예가 높으신터인데, 자식의 인륜 대사를 한 번 정해 놓으신 터에 무단히 이런 편지를 하실 리도 없고, 여러 해포를 그곳에 계실 터이 아 니시고 멀어야 몇 날 후면 올라오실 터인데 무엇이 그리 시 급해서 편지로 그런 말씀을 하실 리가 있읍니까" 또 그리고 이 편지를 열모로 뜯어보아도 필적이 어리어서 십분의 칠팔 분은 아버지 필적 같지를 아니합니다."

임씨가 벌떡 일어나 연상 혈합에 넣어둔 그 전에 온 편지 를 내어보이며,

"이애, 소견없는 말 작작 하고 이 편지와 비교를 똑똑히 좀 하여보아라. 너의 아버지 필획과 한 점이 틀리냐?"

"비교는 하나 마나, 아버지께서 그렇게 편지를 하실 리가 만무하니 깊이 생각을 하셔요."

"생각이 무슨 생각이란 말이냐" 너의 아버지께서 이런 편 지를 아니하셨더라도 내가 먼저 주장을 하려고 하였다. 너 는 참섭할 일이 아니니 아무말 말고 있으라니까 왜 이러느 냐?"

"말"소 흥정은 하였다가 도로 무르지요마는, 혼인은 인륜 대사인데요‥‥."

"네가 지각이 있느냐 없느냐" 무지막지한 하천배의 자식이 라도 계집아이로서 혼인 등사에 말을 못하겠더든, 너는 조 금도 수괴지심이 없이 중언부언, 응, 해괴망측도 한지고!"

"이애, 고만 꾸짖어라. 그게 아직 펄이 안나서 그렇구나.

그만 일렀으니 설마 다시야 그리하랴?"

"지금 철이 아니 나면 언제나 철이 납니까" 계집애년이 제 혼인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것은 고담책에서도 못 보 았습니다."

연희는 감히 다시 말을 못하고 한편 구석에 돌아앉아 눈물 만 더벅더벅 떨어뜨리는데 임씨는 자기 시어머니와 김의관 집에 퇴혼할 공론을 분분히 한다.

"어머님, 김의관집에다 무슨 말로 퇴혼을 하면 좋을까요"

지금 그 집에서는 혼인이 다시 변통이 없을 줄 알고 어서 성례를 하자고 재촉을 하는 중인데요."

"글쎄다,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냐" 이애, 그렇지 아니하다.

아이 아비가 퇴혼하자는 편지까지 하고 퇴혼을 어떻게 할 방침인들 생각을 아니하겠였느냐" 우체로 편지를 부쳐 아이 아비의 시키는대로 하자구나."

각각 편지를 써서 한 봉투에 넣어 등기로 부치고, 날마다 그 회답 오기를 고대하더니, 이왕 같으면 주야 배도 쌍보행 을 띄운대도 십여 일 동안이면 편지가 오고 가지를 못하였 을 터인데, 사흘이 못되어 체전부가,

"편지 들여가오."

하는 소리에 기다리던 편지 답장이 왔더라. 그날 편지 뜯 어볼 때에 장씨"임씨 두 부인은 혼인 파의가 되도록 사연 하였기를 기다리고, 연희는 이왕 정반대로 아무쪼록 퇴혼치 말라는 사연 하였기를 기다리는데 급히 편지를 떼어보더니 연희더러는 이런 말 저런 말 여부없이 행랑어멈을 부르더 니, 연희의 외조 임통정을 청하러 보낸다.

"여보게, 어멈, 지금 한달음에 서학재 넘어가서 작은아씨 외할아버지 영감 좀 여쭈어 오게."

"예."

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급히 가려는걸 연희가 물 끄러미 보다가,

"어머니, 아버지께서 무엇이라고 답장을 하셨어요?"

"그건 알아 무엇해" 어른이 시키는대로만 가만히 있지, 응"

규중처녀가 아니꼬와라."

하고 손에 들었던 편지를 연희 앞에다 홱 집어내던지며,

"어따, 네 눈으로 시원히 보려므나. 바싹바싹 소견없이 우 기더니."

연희가 그 편지를 집어들고 종두지미를 내려다보느라니, 필적은 저의 부친과 방불하나 그 사연은 천만 부당하다.

"연희의 혼인 일사는 일전 편지에 아주 말하였는데, 무엇이 자저되어 진시 퇴혼을 아니하옵고 이처럼 기별하옵는지, 길 게 말할 것 없이 나는 결단코 김의관의 아들로는 사위를 삼 지 아니할 터이니, 이 편지 보옵시는 대로 시각을 머무르지 말으시고 곧 퇴혼을 하옵소서. 연희의 지각없는 말은 종작 없는 어린아이의 소견인즉 다시 그런 개구를 못하도록 꾸짖 으시옵고, 당장 연희의 외조부를 잠시 청하여다가 내 편지 를 보시게 한 후 김의관 집에 직접으로 퇴혼을 하여줍시사 여쭈옵소서. 단정코 퇴혼할 줄로 믿고 황공삼에게 이미 혼 인을 통하여 허락까지 들었사오며, 황씨가의 사정이 급함을 인하여 연희의 연기는 비록 어리나 이 달 안으로 불복일 성 례를 시킨 후, 이곳에 있는 황씨의 집을 방매하고 서울 우 리 옆집으로 반이까지 하기로 작정하였사오니 공연히 유예 미결하여 창피한 지경이 없도록 주선하옵소서."

하였거늘, 연희가 낙심천만하여 가슴이 우둔우둔하며 얼굴 에 상기가 부썩 되어 아무 분개를 못하다가 다시 곰곰 생각 하기를 아무래도 그 편지가 의심이 나는데‥‥‥.

(평일에 아버지 말씀이 혼인을 일찍 하는 것은 큰 폐해라.

남자는 십팔구 세나 이십 세 가량이 되어 골격이 장성하여 야 요촉하는 일이 아니 생기고, 여자는 십오 세 이상 십육 칠 세 가량이 되어야 기혈이 충분하여 생식에 이로우니, 우 리 연희는 세상없어도 십칠 세 이전에는 성례를 아니 시키 겠다 하셨는데, 이 편지에는 별안간에 이 달 안에 불복일로 급히 성례를 시키신다는 말씀이 그 아니 이상하며, 그렇게 칭찬하시던 김씨가는 이 모양으로 타매하시고, 한없이 타매 하시던 황씨 아들은 이같이 칭찬을 하셨으니 그 역시 알 수 없는 일이지. 아버지 범절을 아는 바에 범상 처사도 이렇게 반복하실 리가 없거든, 하물며 자식의 혼인대사를 이렇게 사리에 온당치 아니하게 하실 리가 없고, 설혹 아버지께서 망령이 들으셔서 이쯤 하신대도 나 되어서는 죽을지언정 정 이행할 수가 없는 것이, 혼인은 일백 행실의 근원이라, 개나 돼지 아닌 바에 한 번 정하여 사주까지 받은 혼인을 파의하 고 다른 곳에 허신을 하고 천지간에 몸을 어찌 용납하리요

") 하여 그날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주야 울기만 하니, 장씨는 간절히 달래고 꾀고, 임씨는 꾸짖고 욱박지르기만 하더라.

그리하자 인력거 소리가 뚜루루 나며 행랑어멈이 들어오더 니,

"아씨, 서학재 영감 오셨읍니다."

"벌써 오셨나" 그러면 안방 미닫이를 닫고 영감을 모시고 건넌방으로 들어오게."

행랑어멈의 뒤를 따라서 나이 근 육십한 노인 하나이온 세 상이 다 깎는 머리도 아니 깎고 주먹 같은 옥관자를 두 귀 밑에다 딱 붙였는데, 희뜩희뜩한 수염을 연해 쓰다듬으며 건넌방으로 들어가더니 아랫목에 가 비스듬히 앉으니, 임씨 가 그 앞에 가 날아갈 듯이 절 한 번을 하더니,

"아버지, 근래에는 해소 기운이 좀 덜하셔요?"

임통정이 수염을 일향 쓰다듬으며,

"응, 나는 관계치 않다마는 모시고 몸 성히 있느냐" 네 남 편의 소식은 자주 들으며, 언제나 올라온다더냐" 영희는 어 디 갔느냐?"

임씨가 자기 아버지 앞으로 바싹 가까이 앉으며,

"아버지, 이것 좀 보셔요."

"무엇 말이냐?"

"이 편지가 연희 아범에게서 온 것인데 사연을 보시면 자 연 알으실 터이야요."

"무슨 사연이란 말이냐?"

하고서 안결집을 부스럭부스럭 열더니 돋보기를 내어쓰더 니 자기 딸이 주는 편지를 들고 한구히 보다가,

"이게 웬 말이냐" 점잖은 터에 주단까지 받고 면언을 하고 서 지금 와서 이론을 어찌 한단 말이냐" 이애, 여러 말 말고 기왕 정한 혼인이니 그대로 지내자고 네 남편에게 답장을 하여라."

"아버지께서는 사정도 채 모르시고 저렇게 말씀을 하십니 다."

"사정이 무슨 사정이란 말이냐" 김동을 나도 익숙히 보았 다마는, 그 애보다 더 똑똑한 서랑은 어디 있으며, 그 집이 요부하겠다, 인품이 후덕하겠다, 무엇이 어떠해서 퇴혼을 구 태여 한다고 이러느냐?"

"퇴혼할 만하니까 그렇지요. 공연히 그리하겠읍니까" 연희 아비가 퇴혼을 아니하려고 한 대도 제가 우겨 퇴혼을 하려 고 하였어요."

"너는 또 무슨 주견으로?"

"그런게 아니라 저 일전에 웬 마누라가 생면부지 모르는 터인데 지나다가 들어오더니, 연희를 유심히 보고 잘생기었 다고 칭찬을 하기에 관상할 줄을 아나보다 하였더니, 대강 짐작이나 하노라고, 연희의 초분"중분"말분을 말하는데, 초 분 지나간 일을 귀신같이 알아맞히는 것을 보니, 중분"말분 도 그 말에 벗어나지 아니할 터인데, 연희의 타고난 수는 팔십에 퇴를 달 터이나 중간에 액운이 있어 남의 수양딸로 주어 부모를 갈거나 후취를 주어 팔자땜을 하기 전에는 단 수하기가 십상팔구라 하니, 들으면 병이요 아니 들으면 약 이라고, 그것 하나 있는 것을 남의 수양을 주고 앞이 허수 하여 견딜 수 없고, 나이 파고 지각이 나서 색시 사랑할 만 한 후취 신랑에게 시집을 보내는 것이 좋겠구먼. 김씨가와 정혼을 하였으니 저 노릇을 어찌하면 좋을꼬 하여, 저의 시 어머님과 한걱정으로 지내는 중 편지가 이렇게 왔어요."

임통정의 연기는 비록 많고 외양은 점잖으나 본래 무식한 소지로 무녀배의 미신하는 말을 곧이듣고 무꾸리를 일수 잘 시키는 자격이라, 자기 딸이 관상쟁이의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먼저 제법 점잖게 말하던 본의는 다 어디로 가고 요사 한 수작이 그 딸보다 한층 더한다.

"이애, 그럴 터이면 퇴혼을 하여야 하겠다. 주단 왕래라 하 는 것이 다 무엇이냐" 그 딸이 어떤 딸이라고, 제게 이롭지 못하다는 것을 변통 아니할 수가 있느냐" 또 그나 그뿐 아 니라 이 집에 어른되는 네 남편의 뜻이 이러한 이상에 반대 할 수가 있느냐" 내가 김의관을 가보고 퇴혼을 하여주마. 이 애, 그러나 연희는 아무 눈치가 없더냐" 필경 아무 눈치가 없겠지. 규중 계집아이가 제 혼인 등사에 무슨 참섭을 하겠 느냐?"

"에그, 아버님께서 말씀을 하시니 말이지, 그런 소견없는 년은 처음 보았어요. 저년을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 모르겠 읍니다."

"왜 무엇이라고 하더란 말이냐?"

"그년이 퇴혼한다는 말을 듣고 개냐 돼지냐 별말을 다하며, 저의 아비 편지를 번연히 보면서 부썩부썩 그렇게 편지할 리가 만무하다고 하기에 계집애년이 어른 하는대로 할 것이 지, 참섭이 무엇이냐 꾸짖어도 일향 듣지 아니하여 밥도 아 니 처먹고 쪽쪽 울기만 한답니다."

"오냐, 너무 욱박지 말고 가만 내버려 두려므나. 제 뜻이 기특지야 아니하냐" 어른이 제 전정을 위하여 억지의 일을 하는 것이지."

"다른 일과 달라 계집아이가 혼인 등사에 간섭이 무엇입니 까" 고년 정 고집을 하거든 박살을 하여 없애겠읍니다. 그런 소견없는 것을 자식이라고 두면 무엇하게요" 알뜰살뜰히 속 만 타지요."

"어, 네 지각이 연희만 도리어 못하구나. 아까도 말이"는 제 뜻인즉 가상하니 아무쪼록 좋은 말로 달래어 마음을 안 유시킬 생각은 아니하고 왜 그러느냐" 그리 말고 내 말대로 여러 가지 말로 달래어 밥도 먹고 울지 않도록 하여서 황소 년을 올라 오는대로 성례를 시켰으면 고만이지, 무슨 걱정 을 한단 말이냐" 나는 지금 곧 김씨가에 가서 혼인 파의의 말을 하고 오마."

임통정이 즉시 김의관 집으로 찾아가 김의관을 보고 수작 하는 것이라.

"주인이 댁에 계신가?"

"누구시오니까?"

하며 문을 열어보더니 깜짝놀라 마주 나와 영접하여 방으 로 들어가 아랫목 보료를 가리키며,

"이리 앉으십시오."

"아무데인들 관계 있나?"

김의관이 재삼 권하여 임통정을 아랫목에다 앉히고 절을 공손히 한 후, 두 무릎을 단정히 꿇고 앞에 가 앉으며,

"일기가 심히 좋지 못하온데 기체 어떠합시오니까?"

"응, 댁내 일안하신가" 그러나 내가 오늘 자네를 찾아온 것 은 섭섭한 말 한 마디를 하자고 왔거니."

"섭섭한 말씀이 무엇이오니까?"

"응, 말하지. 자네 자제와 내 외손녀와 정혼을 아니하였던 가?"

"예, 그리했읍니다."

"혼처로 말하면 자네 댁이나 내 사위 집이나 막상막하고, 신랑"신부가 서로 나무랄 데가 없은즉 극히 가합한 터이지 마는, 천장 연분이 부족한지 아니될 일 한 가지가 생기었 네."

김의관의 눈이 둥그래지며,

"그게 어쩌신 분부오신지요?"

"매사를 전설거하는 편이 옳지, 간격을 두고 우물쭈물 하여 서는 가치 아니하기로 말일세. 남자와 달라 여자들은 아무 문견이 없고 요사스럽기는 내집 남의 집 할 것 없이 일반이 아닌가! 내 사위는 지금 부산에 가 있고, 내 딸이 저의 홀시 어머니 되시는 양반과 있는데, 아마 어떤 관상쟁이 계집이 왔던가 보데. 소위 관상쟁이니 사주장이니 하는 것이 알기 야 무엇을 알겠나마는, 내 외손녀의 상을 보고 십삼 년 지 나간 일을 일호 차착 없이 내리 맞히니까 깜짝들 혹해서 내 두사를 물은즉, 김씨가와는 연분이 없어 제수에두 해롭고 시집에도 이롭지 못하리라고 대답하는 것을 듣고서‥‥."

"별말씀을 다 합니다. 그까짓것들이 무엇을 안다고 그러십 니까" 이왕 서랑과 동리간에 중매 여부없이 단단히 면약을 하여 주단거래까지 한 혼인을 요사스러운 계집년의 주착없 이 지껄이는 말을 듣고 다른 의논을 할 수가 있읍니까" 그 집 아낙에서 혹 이론을 하시거든 노인장께서 명기불연을 하 십시오."

"허허, 괴이치 않으이. 나인들 알아듣도록 말을 아니했겠나 마는, 내 딸도 고집을 하거니와 제일 신부의 조모 되시는 어른이 한사하고 퇴혼을 하려 하여, 내 사위에게 그 동안 편지 왕래가 여러 번 되어 아주 작정이 되었나 보데."

"그러나 그럴 수가 있습니까" 서랑 그 사람의 평일 범절을 깊이 아옵는 바 필경 이 일을 경홀히 변경 아니할 듯 싶은 데, 편지 왕래까지 하였다 하오니 아무래도 의심이 나는걸 요."

그 말을 그치자 계집하인이 사랑문 앞에 와서,

"영감마님, 아낙에서 여쭈십니다."

"오냐, 들어간다."

김의관이 일어서며,

"앉아 계십시오, 안에 잠깐 다녀 나오겠습니다."

"응, 그리하소. 나도 총총하여 차차 일어서겠네."

김의관이 안으로 들어오니, 그 부인이 분함을 못 이겨 얼 굴이 푸르락붉으락하며,

"영감, 왜 그리 구구하시오?"

"무엇이 구구하단 말이오?"

"저 애들이 들어와 말하기를, 사랑에 웬 손님이 오셔서 도 령님 혼인 말씀을 하시는데, 자세는 몰라도 퇴혼이니 어쩌 니 하셔요 하기에, 세상에 궁금해서 여편네의 행실은 아니 나 사랑 문턱에 가 엿들어 보았는데, 그런 괴악한 집 풍속 이 어디 있소! 혼인은 인륜 중 제일 큰 일인데 관상장이의 말을 듣고 이러니저러니 이론을 한단 말이요" 에그, 아니꼬 와라. 내 자식이 어디가 병신이요" 무슨 걱정이 되어서 그 아니꼬운 일을 당하시고 구구한 말씀을 하셔요" 첫 마디에 그러하겠다고 우리도 그다지 탐탁지 아니하노라고 못하시 고."

"그렇게 말을 하면 나 역시 주축일반되지를 아니하오" 퇴 혼은 어차어피에 되는 터인데 말이나 그렇게 하여 나마저 그른 사람이 아니되어야지요."

"영감 생각에는 그러하시지마는, 남들이야 그렇게 아나요"

서가의 집에서는 퇴혼하려는 것을 우리 집에서는 아무쪼록 혼인을 지내자고 빌붙는 줄 알 터이니, 그 아니 창피스러워 요?"

"미상불 그도 그렇소. 혼인 아니되는 이상에 쾌쾌한 모양이 나 보여야 옳겠소."

영록이가 협실에서 글을 읽다가 임통정이 와서 퇴혼 언론 하는 양을 보고 저의 아버지가 무엇이라 대답을 할는지 궁 금하여 가만히 엿듣느라니, 저의 아버지가 준절히 그 불가 함을 말하는 것을 듣고 속마음으로, (아버지께서 사리를 따져 대답을 잘 하시는구나. 될 말인 가! 이미 정하여 사주까지 받고서 지금 와서 퇴혼이라니! 우 리 아버지께서 저렇게 대답을 아니하신대도 내가 바로 홀아 비로 늙을지언정 다른 신부에게는 장가를 들지 아니할 터이 다.) 하고 있더니, 자기 아버지가 안에를 다녀 나오더니 임통정 을 대하여,

"길닿게 말씀하실 것 없읍니다. 그 집 의향이 이미 그렇게 들어간 이상인즉 생각대로 하라 하십시오. 자식놈이 아무리 못생겼기로 그 집 아니기로 설마 장가를 못 들이겠읍니까"

마음에도 그 집과 혼인 지내기가 썩 탐탁지 아니하건마는 점잖은 도리에 한 번 정한 혼인을 이론하는 것이 불가하여 그대로 있었더니 너무나 잘되었습니다.

"여보게, 일은 가이없이 되어 할 말이 없네마는, 이 역시 두 집에서 다 좋자고 하는 일인즉 조금도 혐의 쩍게 여기지 말고, 두 집이 예같이 친근하게 지내기를 믿네."

하고 소매 안으로부터 사주단자를 내놓는지라. 영록이가 절통하기도 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걱정들을 것을 불계하고, 좌석으로 썩 들어가 임통정에게 절 한번을 하고서 두 손을 마주잡고 한편에 비켜섰다가, 임통정이 작별하고 일어서 나 아가는 것을 따라 나가 중문밖에 이르러서 임통정 앞에 가 우뚝 서며,

"제가 여쭐 말씀이 있읍니다."

"응, 무슨 말인구?"

"이런 말씀이 아이들 되어 대단 불가하오나, 적은 규모를 지키느라고 대의 관도에 말씀을 아니하면 도리어 고집 불통 이니까 여쭙니다. 지금 노인장께서 가친께 말씀하시는 것을 가만히 듣자온즉, 사리 십분 가합치 아니하오니 노인장께서 서씨댁에를 가거든 명기 불연을 하옵서 일륜 대사에 큰 결 점이 없도록 하옵소서."

"그 일은 너의 어르신네와 이미 결정하였은즉, 너는 참섭할 일이 못된다."

"아니올시다. 말씀을 아니 내었으면이어니와 기위 여쭙는 터이니 말씀이올시다. 사람의 혼인은 말"소홍정과 달라 한 번 정한 것을 무르는 법이 없거늘, 혹세무민하는 요녀배의 무거한 말에 고혹하여 자식의 백년 가약을 파괴하면 이는 무지"몰각한 자의 아니할 바이오니 노인장께서는 생각을 다 시 하여보옵소서."

"그게 무슨 소리냐" 혼인 정하였다가 퇴혼하는 일이 더러 있는 일이요, 또는 어른이 주장하여 좌우간 조처하는데 대 하여, 신랑 네가 참섭하는 것이 만만불가하니라."

"노인장이 아니하실 말씀이 올시다. 혼인을 어른이 주장하 시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오나, 이번 일에 당하와는 윤리 에 위반되는 거조이온즉 어찌 말씀을 아니 여쭈오리까! 만 일 일향 퇴혼을 하는 동시에 시집을 타문으로 가면 서씨와 규수도 행실이 온당치 못하고, 장가를 타문으로 가면 저도 행실이 온당치 못한 줄로 생각하오니 처분하여 하옵소서."

임통정이 그 대답은 다시 아니하고 행행히 자기 사위의 집 으로 와서 그 딸을 보고, 김의관과 수작한 것을 전하고 겸 하여 영록의 말을 이야기하며, 큰 성사나 한 듯이 부녀가 재미스럽게 웃으며 담화하는 것을 연회가 가만히 엿듣고 기 가 막혀 내심으로, (나는 외할아버지 거기 가시는 것을 보고 필경 무안을 당 하고 오시려니 하였더니‥‥‥. 내 집이나 남의 집이나 어 른들 처사하시는 것이 딱하지 아니한가! 에그, 외할아버지 를‥‥‥쫓아 나와서 여쭙더란 말씀이 열 번 옳고 백 번 옳 지. 아무리 저렇게들 하신대도 바로 내 몸이 열 조각이 나 기전에는 다른 데로 시집을 아니 갈 터이니까‥‥‥.) 공변된 광음은 사람의 사정을 따라 재촉하고 지체하지를 아니하고 일정한 이치를 따라 으레 가니, 둥그렇던 보름달 이 점점 이즈러져 부지중 그믐께가 되어오니, 임씨부인이 자기 시어머니와 의논을 하고 대례지낼 준비를 분분히 차려 놓고 부산에서 황공삼이 올라오기를 눈이 감도록 기다리는 데 연희는 기가 막혀 일정한 생각이, (살아서 황가에게 시집을 가느니, 차라리 목이라도 매어 세 상을 잊으리라.) 하고 몇 차례를 독한 마음을 먹었다가 다시 생각하기를, (오냐, 내가 경선히 죽을 것이 아니라 차회를 좀더 보아 정 위급하거든 죽어도 늦지 아니하다. 아무리 연구를 하여보아 도 이 일이 아버지가 알으시는 것 같지를 아니하고, 설혹 알으시고 그런 거조를 하시면 아버지 앞에 불가한 뜻을 시 원히 한 번 폭백을 하여보는 것이 옳겠다. 아마 소위 황가 가 올라올 때에는 아버지께서 같이 오실 터이지.) 그리하자 문밖에서 들레며,

"신랑 서방님이 지금 올라오셔서 이 뒷집에 사처를 정하셨 는데, 댁 나으리마님 서간을 보내셔요."

임씨가 반색을 하여 마루로 마주 나오며,

"이애, 새 서방님이 올라오셨다며! 나으리 서간이라니, 나 으리께서는 못 행차하시는 것이로구나. 이리 다고."

하더니 그 편지를 들고 자기 시어머니 앞에 가 뜯어 본다.

"이번에 기어코 신랑과 같이 올라가서 저희들 성례하는 재 미를 보자 하였더니, 공교히 여러 달 끌어오던 송사의 재판 이 격일하여 몸을 빼낼 수가 없어 생각 다 못하여 신랑만 올려보내니, 내일로 곧 성례를 시키시며 장황히 다른 날을 또 택할 것 없이 아주 합례까지 시키시옵소서. 그날이 극히 길한 날일뿐더러 황서방의 사정이 여러 날 지체할 수가 없 으니, 나 없는 것을 부디 섭섭히 여기지 말고 내 말대로 혼 인을 지내게 하옵소서. 일이 이같이 급하였은즉 잔치음식을 집에서 잔만할 수 없을 터인즉, 요릿집에 보내어 교자나 몇 틀 맞춰다가 안팎 손님과 하인배들을 대접하도록 하옵소서.

신랑"신부의 의복은 이왕 유념한 것이 있을 터이니 응당 미 비한 것이 없을 듯하오. 퇴혼한 이래로 김의관 집에서 무리 한 책망이나 없는지" 책망이 만일 있을지라도 아무 관계 없 거니와 행여나 우리 집에서는 그 집에 대하여 좋지 못한 대 답을 말고 귀먹은 체 못 들은 체하소서."

임씨가 그 편지를 자기 시어머니께 보이고 일변으로 정안 청"교배석"독좌상 각색 설비를 분별하며, 일변으로 떡을 마 춘다, 술을 사온다, 국수를 사온다 하며, 일변으로 수모를 불러 연회의 머리를 감기고 세수도 시키려 하는데, 연희는 몸이 아프다 청탁하고 일체 기동을 아니하니, 장씨는 달래 고 임씨는 꾸짖으며 몸이 아무리 아파도 참고 일어나 수모 시키는대로 하라 하나, 연희는 일향 말을 아니 듣는다.

"저년이 금방 뒈지게 되었나, 도무지 기동을 못하게" 여보 게 수모, 고만 내버려두게. 세수를 아니하여 분이 잘 아니 먹거나, 머리를 아니 감아 결어빠지거나, 내일 성례할 때에 나 단장인지 성적인지 하게 그만 내버려두게."

"에그, 그래서 어떻게 하나" 오늘 말끔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아두어야 할 터인데."

"아무렴, 대수인가! 고만 내버려두게, 내일 저도 소견이 있 겠지. 저 모양으로 파발을 하고 교배를 하거나 단장을 하고 교배를 하거나 나는 모르네."

"그러실 리가 있읍니까" 지금은 작은아씨께서 몸이 편치 않으시니까 귀치않아서 그러셨지, 내일이야 무슨 날이라고 성적을 아니하실라구요" 작은아씨, 그렇지 아니하오" 내가 똑바로 알지."

그 모양으로 야단법석을 하다가 수모는 내일 오기로 가고, 집안식구들은 잔치 차리느라고 분주한데, 연희가 아무리 생 각하여도 박두한 화색을 면키 어려운 중, 손녀를 남다르게 사랑하는 장씨노인은, 연희가 어린 소견에 제 뜻대로 못하 는 것을 분히 여겨 혹독한 마음을 둘까 염려함이런지, 자나 깨나 연희의 곁을 아니 떠나니, 연희가 한 가지 꾀를 내어 저의 할머니 훈계를 옳게 듣고 마음을 고친 듯이 벌떡 일어 나 세수를 가져오라 하여 분 세수도 정히 하고, 저녁밥도 앙탈없이 많이 먹으니, 장씨노인은 집안에 큰 경사나 난 듯 이 마음을 턱놓고 며느리를 가보고,

"며느라, 우리 연희가 인제야 회심을 하였나 보더라."

"왜요?"

"제가 자청하여 소세도 하고 저녁밥도 곧 많이 먹었다."

"너무나 다행합니다. 말이 그렇지, 그년이 영영 고집을 하 고 말을 아니 들으면 죽이지도 못하고 어떻게 할 뻔했읍니 까?"

"글쎄다, 인제는 제 거동대로 내버려두고 아예 비위를 거스 려 말하지 말아라. 나도 인제는 저 있는 방에를 자주 가보 지 않겠다. 아이들이, 어른이 올라와 있는 것을 귀치않아하 는 줄을 번연히 알지마는, 그 애가 하도 매몰하니까 나는 은근히 겁이 나서 제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꼭 지켰더니 제 가 그 모양으로 풀리는 것을 보니까 내 마음이 턱 놓인다."

연희가 저의 할머니 없는 틈을 승시를 하여 머리맡에 걸린 수건을 벗겨 들고 슬며시 뒤꼍으로 돌아가 혼자 소리없이 탄식하기를,

"에그, 내가 우리 부모의 무남독녀 외딸로서 아무쪼록 살아 서 부모를 효도로 봉양하여 만년에 재미를 보시도록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어늘, 오늘날 이같이 비명에 자처하는 것 은 불효에 가까우나, 인륜의 큰 관계로 사세 부득이한 거조 인즉, 기실은 불효가 아니라 이는 실로 부모를 위함이니 나 의 지조를 조촐히 하여 남의 타매를 아니 받으면 그 빛난 성예가 부모에게 미치게 함이니라."

하고 수건 한 편 끝을 담밑 오동나무 가지에 걸쳐 매고, 한 끝으로 자기의 목을 매려 하는데 누가 별안간 와락 달려 들어 붙잡으며,

"여보, 좀 참으시오."

연희가 깜짝놀라 돌아보며,

"에그머니, 이게 누구야!"

오매에 잊히지 못하는 사람은 눈을 감아도 그 전형이 환하 게 보이느니, 이는 일심의 정기가 그 사람 하나에게 모여,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염염자재한 곡절이라. 연희가 죽기 로 결심하여 세상 만사에 아무 경황이 없는 중, 이게 누구 야 소리를 지르고 홱 돌아다 보는데, 그때로 말하면 보름께 가 아니니 달빛도 없고, 사람 거처하는 곳이 아니니 등불도 없고, 오직 침침칠야 곁에 사람을 분별키 어려운 밤이언마 는, 영록의 얼굴을 첫대 알아보고 아무말 못하고 땅에 가 푹 엎드러지니 영록이가 황망히 붙잡아 일으키며,

"여보, 이게 무슨 해거요" 정신을 차려 일어나 내말을 좀 들으시오."

"‥‥‥."

"사람이 죽는 것은 막마침 가는 일인데, 지금 꽃으로 이르 면 봉오리도 아니 전 터에, 왜 막마친 가는 일을 행하려 하 오?"

"‥‥‥."

"우리가 이곳에 오래 지체하며 장황히 말할 경위가 못되오 니, 간담을 들어 한 말씀 권고하는 것인즉, 아무쪼록 마음을 돌리어 독한 거조를 말고 부모의 명령을 승순하여, 나 같은 용렬한 위인은 계련치 말고 극가한 신랑과 아름다운 배필이 되어 유자생녀하고 백년을 해로하오. 내가 오늘 밤에 월장 을 하여 규중 여자와 접어를 하는 것이 실례인 줄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우리가 어려서 같이 자라 맵고 단단한 마음을 깊이 짐작하는 바, 오늘밤을 당하여 스스로 추측을 하여본 즉, 필경 생각을 옹색히 하셔서 망령된 거조 있기가 십상 팔구이기로 법률에 저촉됨을 불구하고 깊은 장원을 넘어왔 사오니 특별히 용서하시오."

연희가 그 지경을 당하니 아무리 여자라도 말을 아니하는 수 없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간신히 입을 열어 모기 소리 만치,

"이 사람은 한 번 죽기로 결심하온 바에 다른 말씀은 할 것 없사오니, 부질없이 지체 말으시고 어서 바삐 나가옵소 서."

영록이가 그 말을 듣더니 연희의 손목을 턱 잡으며,

"소저가 이렇게 결심을 한 터이면 내가 도리어 실수의 말 을 하였소. 그러나 부모가 일시간 오해하고 부당한 거조를 하신다고 생명을 끊고자 함은, 이는 목전에 불측한 욕을 면 하나 부모의 누명을 더하게 함이오니, 그리할 것 없이 나와 함께 이 담을 넘어 도망하여 좋은 도리를 구처하는 것이 어 떠하오?"

"죽을 마음을 결단함은 사세가 부득이함에서 나옴이온 데‥‥어디든지 버리지 않으시면‥‥그러나 저 담을 어떻게 넘어가나요?"

"그것은 걱정없소. 내 어깨를 디디고 올라서서 저 나뭇 가 지를 휘어잡고 담으로 올라가면, 그 너머에는 내가 넘어올 제 갖다놓은 사다리가 있을 터이니 그리로 내려가오."

"에그, 나만 넘어가면 어떻게 하나요?"

"내 걱정은 말으오. 어떻게 하든지 못 넘어가겠소?"

연희가 그 담을 넘어가 기다리느라니 영록이가 뒤미처 넘 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느 으슥한 곳에 와서,

"우리가 이 모양으로 가다는 경찰이 밝은 세상에 얼마 못 가서 탄로가 날 터이니, 여기 가만히 숨어 앉았으면 내가 우리 집으로 도로 들어가 의복 입습을 도둑하여가지고 나올 것이니, 그것을 바꾸어 입고 가는 것이 옳을까 하오."

"시키는대로 하지요."

영록이가 임통정 다녀간 뒤로 주사야탁이, (어떻게 하면 서씨가 규수를 다른 데로 시집을 못가게 하 고 내가 기어이 그리로 장가를 갈꼬") 하더니, 급기 부산으로 가 있는 황공삼이가 서규수에게 혼 인을 정하고 성례차로 올라왔는데 내일이 혼인날이라는 말 을 듣고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당장 칼이라도 가지고 황가를 푹 찔러 죽여 없애고 싶지마는, 강약이 부동할 뿐 아니라, 번다한 이목에 사실상 되지 못할 일이라 억지로 참 고 슬며시 이웃 노파를 연비하여 연희의 동정을 탐지한즉, 연희가 기어이 다른 사람에게 허신을 아니하려고 식음을 전 폐하고 누워 있다는 말을 듣고서, 심중에 한없이 기뻐하더 니, 또 연희가 황가 신랑이 왔다는 말을 듣고서 일어나 소 세도 하고 밥도 먹어 얼마쯤 좋아하는 모양이라는 소문을 들으니 기쁜 마음이 변하여 분한 생각을 견디기 어려워 어 찌할 줄 모르다가 혼잣말로,

"에라, 남의 전하는 말을 도무지 준신할 수 없다. 내 눈으 로 시원히 연희의 거동을 보는 것이 옳겠다."

하고 메투리 한 켤레를 얻어 단단히 신고 곧 밤들기를 기 다려 서주사의 집 뒷담에 사다리를 갖다 놓고 막 넘어가려 는데, 귓결에 얼핏 들으니까 담 안 오동나무 밑에 어떠한 여자가 홀로 서서 신세 한탄을 은근히 하더니 수건을 가져 목을 매어 죽으려 하는데, 아무리 어두운 밤이기로 영록이 가 어찌 연희를 몰라보았으리요. 급한 바람에 뛰어내려와 턱 붙잡아 구제하고 그 담을 같이 나온 일이라. 영록이와 가만히 자기 집으로 들어가, 자기 입던 의복 일습을 이끌고 아래 대로 내려서, 훈련원 벌판을 지나 수구문 밖에를 나아 가니 밤이 벌써 밝아오느라고 동방이 훤하여 온다.

"가자 하시니 따라오기는 하나, 날은 밝아오고 정처는 없으 니 어찌하면 좋은가요?"

"날이 아무리 밝기로 남복을 한 이상에 무슨 염려가 있사 오리까" 누가 묻거든 나와 형제간이라고 대답을 합시다. 지 금 향하고 가기는 다른 곳이 아니라 무수막 건너 앞구정 사 는 나의 고모댁으로 가려 하는데, 나의 이종형님이 상해로 장사를 다니시는 터이니 필경 댁에 아니 계실 테지마는, 우 리 고모 아주머니께서는 범절이 정대하사 우리들이 들어오 는 것을 보시면 얼마쯤 반가이 여기사 좋은 방침을 가르쳐 주실 터이니 걱정 말고 어서 갑시다."

무수막고개라는 데가 경성 지근지처에 있으니, 평지일반으 로 여기고 넘나들지만, 만일 인가가 희활한 하향에 가 있게 되면, 영로에 한참여를 착실히 할 만한 곳이다. 장정이라도 급히 넘어가려면 다리가 뻑뻑하고 숨이 턱에 닿는데 더구나 귀골로 생장하여 대문 밖 일 마정을 못 걸어본 연희와 영록 이리요. 두 발이 통통 붓고 두 다리가 치저려 촌보를 걷기 가 어려운데, 덜미에서 사람이 쫓아오는 듯 정히 난당한 중 고개마루로서 사람의 소리가 지껄지껄 나며,

"이라 워 디여, 이라 이놈의 말아."

삐걱삐걱 찌걱찌걱 소몰잇군 말몰잇군이 나무를 싣고 떼를 지어 너른 길이 빽빽하게 내려오니,

"여보, 아니되었소. 우리 저 언덕 밑에가 숨어 있다가 다 지나가거든 갑시다."

"에그, 해인이 연락부절할 터인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고 영록과 같이 길 아래 언덕 밑 솔포기 밑에 가 숨도 크게 못 쉬고 앉았느라니, 그 소 몰잇군이 그 앞에를 막 내 려오자, 어떠한 자 삼사 명이 마주 올라오며 그 중 앞선 말 군을 향하여,

"여보, 말 좀 물어봅시다."

"무슨 말이요?"

"지금 이 길로 열사오 세 가량 되어보이는 총각"처녀가 가 는 것을 보았소?"

"무엇이요" 우리는 아무것도 못 보았소."

"이 양반이, 이 길로 정녕히 갔는데 못 보았단 말이 웬 말 이요?"

"그 양반 생떼를 쓰네. 못본 것을 못 보았다고 하지, 어떻 게 하라오" 여보, 이 길로는 총각"처녀커녕 색시"신랑도 아 니 갔소."

그자들이 우두커니 서서 저희끼리 공론하는 말이라.

"여보, 이리로는 아니 왔나 보오. 이리 왔으면 말군들이 못 보았을 리가 없고, 보고서야 바로 일러주지 아니 할 리가 있소?"

"글쎄, 그러면 어디로 갔을까" 지소 순사가 분명 이리로 가 는 것을 보았다던데."

"순사의 말은 어디 분명합더니잇가" 처녀는 못 보고 학도 같은 남자 둘이 지나는 것만 보았다던데요."

"그러면 그 남자 아이 둘의 끄친 곳은 있겠지. 예까지 온 종적은 분명한데 간 곳이 없단 말인가?"

"그건 알 수 업소마는 한강길로 오는 사람더러도 물어 보 고, 뚝섬길로 오는 사람에게도 물어보고, 이 길로 오는 사람 보고도 물어보아도 못 보았다 각기 다 일반인데, 하필 이리 로만 찾아갈 필요가 없으니 우리 셋이 각각 갈라서 세 군데 로 쫓아갑시다."

그 중 한 놈이 핀잔을 탁 주며,

"이 사람, 우리가 그렇게 열나서 찾을 것이 무엇인가" 양반 이 시키는대로 예까지 와보았으니 고만이지."

또 한 놈이 화를 버럭 내며,

"여보, 그럴 수가 있소" 양반님네는 우리만 믿고 시키시는 데 채 찾아보도 아니하고 도로 간단 말이요" 아까 저 친구 말씀하시던 압구정까지 가보는 것이 옳으니, 한강이니 뚝섬 이니 다 고만두고 압구정으로 가보아서 만일 없으면, 한강 이고 뚝섬이고 찾아볼지라도 예서 도로 가는 것은 만만부당 하오."

지금 말하던 자는 즉 황공삼의 신임하는 하인이라. 압구정 에를 건너가 이진사집을 쏜살같이 찾아 들어가니, 이진사는 별사람이 아니라 영록의 고모부이니, 그는 오 년 전에 불행 하고, 그 아들이 당가하여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고 생활을 하는데, 본래 넉넉지 못한 가산이라 이 진사의 아들 이주사 가 상업에 길을 터서 집에 들어 있을 때는 별로 없고, 북경 과 상해를 문턱 드나들 듯하며 돈을 버는대로 꼭꼭 모아 자 기 집으로 환을 부쳐 논도 사고 밭도 사서 점점 발빈이 되 어 가는데, 이주사의 어머니는 곧 영록의 고모라. 비록 앞에 치마를 두른 부인일지언정, 정대한 범절이 좀체 남자로는 명함도 못 들일 지경이라. 그런 고로 영록의 부친 김의관도 자기 매씨의 말이라면 대단히 어렵게 아는 고로, 서씨가에 서 퇴혼하는 이야기를 고하였더니, 김씨부인이 열길 스무길 뛰며 그런 변괴가 있으리 말리 하고, 반대 아니하고 허락한 자기 동생 김의관을 향하여 대단히 나무라는 것을 영록이가 역력히 듣고 본 고로, 얼마쯤 자기들을 두호하여 줄줄 믿고 그리로 향하고 가던 것이러라. 하루는 김씨부인이 자기 동 생의 소식도 궁금하고 영록의 혼인 일사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어, 방장 편지를 써서 놓고 하인을 불러 보내려 하 는 차에. 부리는 노파가 들어오더니,

"김의관댁에서 하인이 왔어요."

"하인이 이 꼭두 식전에 어째서 왔단 말이냐" 무슨 일이 있다더냐?"

"간밤에 그댁 도령님이 도망을 하셨는데 댁으로 혹 오셨나 알러 왔답니다."

김씨부인이 깜짝놀라며,

"그게 무슨 소리냐" 도령님이 도망을 하다니, 그 하인 이리 들어오라고 얼핏 불러라."

하인 하나이 노파를 따라 들어오더니 뜰 아래서 허리를 굽 신 절 한 번을 하며,

"소인 문안드립니다."

김씨부인이 내다보며,

"오, 판득이 왔느냐" 무엇이야, 도령님이 어디를 갔어" 그 게 무슨 소리냐?"

"도령님께서 간밤에 주무시다가 슬며시 어디로 가셨는데, 온 댁내가 도무지 모르고 계시다가 오늘 새벽에 건너댁 작 은아씨가 어디로 간 곳이 없다고 불끈 뒤집히는 통에 의심 이 나셔서 작은 사랑을 열어보시니까 도령님도 아니 계셔 요."

"그러면 도령님이 앞 댁 작은 아씨와 함께 어디로 갔단 말 이냐?"

"그는 자세 알 수 없읍니다마는, 그 댁 작은아씨가 어디로 가시자 댁 도령님께서도 아니 계시니 그 아니 이상합니까"

그러니까 만구 일담이 같이 도망을 하였다고 한답니다."

김씨부인이 혀를 툭툭 차며,

"잘 되었다. 경위없는 일을 기어코 하려고 하더니. 너희들 이 댁에는 왜 왔느냐" 도령님 댁에 온 줄로 알고 왔느냐?"

"댁 영감 마님 내외분께서 걱정하실뿐더러, 앞댁에서는 오 늘이 대례날인데 신부아씨가 그 모양으로 부지 거처이자, 댁 도령님이 아니 계시니까 그 댁도 그댁이려니와 제일 신 랑 양반이 펄펄 뛰며 어떻게 야단을 하는지, 두 댁 하인까 지 나서서 사면 수색하는 중, 댁으로 혹 나오셨나 하여 소 인을 앞세우고 이렇게 찾아 나왔답니다."

김부인이 화를 버럭 내며,

"에이 괴악한 놈들, 댁에는 온 이도 간 이도 없다. 잔소리 말고 썩 들어가거라. 그러나 철모르는 어린 것이 어디로 가 서 고생을 하노! 그것이 어떤 자식이야! 우리 친정 오대 독 자로 금이냐 옥이냐 하는 것인데, 저게 무슨 변이란 말인구"

내가 아무래도 집에 가만히 앉았을 수가 없다. 돌아가서 우 리 영록이를 어떻게 하던지 찾아야지, 그대로 내버려 두었 다는 참혹한 고생을 시킬 터이라."

하고 문안에서 나온 하인을 쫓아보낸 후 즉시 교군을 차려 자기가 문안으로 들어오는데, 김씨부인이 비록 부인일 법해 도 하례배의 통사정을 남자보다 못지않게 하여, 강을 건너 고개를 당도하면 교군에 내려 번번이 걸어 넘어가는 터이 라. 교군은 앞세우고 자기는 지팡이를 짚고 찬찬히 무수막 고개를 넘어오는데, 밤새도록 서리에 결었던 흙이 무심히 겨드락 길로내려오다가 신 바닥에 녹은 흙이 미끄러지며 뒤 로 덜컥 넘어지며 지팡이가 저만치 나가떨어진다. 김씨부인 이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이렁나 흙 묻은 옷을 툭툭 털며,

"에그머니, 길도 미끄럽다. 하마하더면 어떻게 할 뻔했어!

그러나 내 지팡이는 어디에 떨어졌을까" 에그, 저것 보게, 저기 내려가서 자빠졌네."

하고 길 아래 겨드락으로 그 지팡이를 집으로 내려간다.

이때 영록과 연희는 찾아오던 하인들이 압구정으로 가는 양 을 보고 진퇴유곡이 되어 돌아가도 못하고, 그 하인들 회정 하는 거을 보아서 기어이 압구정으로 나아갈 작정으로 숨었 던 솔포기 밑에 가 쥐 숨듯 하고 있어 감히 내다보지도 못 하더니, 별안간에 어디로서 휘익 소리가나며 몽둥이 하나가 머리 위로 들어오더니, 자기 있는 앞에서 고삐 한 길이만치 가서 떠어지는 양을 보고 더럭 겁이 나기를,

"인제는 큰일났다! 아까 찾아가던 놈들이 필경 우리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매질을 함부로 우악하게 하며 쫓아오나보 다."

하여 수각이 황당히 있더니, 인적이 저벅저벅 나며 누가 그 막내 떨어진 곳으로 오는 것을 보고서, 연희는 더욱 겁 을 내어 솔가지 뒤로만 들어가는데 영록이가 와락 뛰어나가 그 삶을 탁 붙잡더니,

"에그, 아주머니!"

김씨가 지팡이 집기에만 골몰하여 그 곁에 영록이 있는 것 을 미처 못 보았다가, 아주머니 보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이 곧 영록이라 손목을 턱 잡으며,

"이애, 네가 이게 웬일이냐" 에그, 저 도령은 또 누구냐?"

"말씀이 장황해서 여기서는 여쭐 수가 없사오니, 아주머니 저희들을 우선 살려주셔요."

"무슨 곡절로 네가 예 와 있는지는 모르겠다마는 내가 지 금 너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니 같이 들어가자. 네 아비에 게 말을 하여 과히 꾸짖지 아니하도록 하마."

"죽으면 죽었지, 지금 집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읍니다."

"정 그러면 우리 집으로 나아가자. 글쎄, 저 도령님은 누구 냐?"

"차차 알으셔요. 그러나 아주머니댁에도 가기가 어려운데 요."

"무엇이 어려워?"

"저희 찾아간 하인들이 아주머니댁으로 나갔는데요."

"응, 그래서 말이로구나. 그놈들이 왔기에 내가 소리를 질 러 쫓아보내고 궁금함을 못이겨 내가 지금 너의 집으로 들 어가는 길이다."

하며 연희를 자세자세 여겨보더니,

"옳지, 이제 보니까 저 도령이 도령이 아니로구나. 네가 어 쩌자고 남의 집 처녀를 이 모양으로 데리고 나섰느냐" 오냐, 이곳에 오래 지체할 수 없다. 나 타고 온 교군에 너희 둘이 타고 우리 집으로 어서 급히 가거라. 나는 천천히 걸어갈 터이니."

김부인이 분주히 길 위로 올라서서 앞에서 기다리는 교군 군을 불러 영록과 연희를 태운 후, 교군 앞 휘장을 꼭 가리 어 떠나 보내고, 자기는 지팡이를 짚고 뒤를 따라 들어와, 뒷방으로 영록 일행을 데리고 들어가 자세한 말을 묻는 것 이라.

"글쎄, 이 자식아, 너는 어찌했던지 남의 집 귀한 처녀를 어찌하자고 이 모양으로 데리고 나섰단 말이냐?"

"아주머니께서 자세한 사정을 모르시니까 이렇게 걱정하시 기 쉬우시나, 제 말씀을 여쭙는 것을 들으시면 다 통폭하실 터이올시다."

하고 자기가 동리 사람의 전하는 말을 듣고 궁금증이 생겨 서, 서주사 집 뒷담에 사다리를 갖다놓고 담 너머 넘겨다보 던 말로, 그 담 안 오동나무 가지에다 연희가 목을 매어 죽 으려 하는 것을 보고 급히 뛰어내려가 구제하던 말로, 그 길로 담을 같이 넘어 남복을 시켜 데리고 압구정을 향하고 오던 말로, 나무장수를 만나 길 밑 언덕에 가 둘이 숨어 있 느라니까, 찾아 나오는 하인들이 말군과 수작을 하고 고개 로 넘어가던 근경이며, 압구정으로 가자니 찾아나간 하인들 의 거취를 알 수 없고, 문안으로 들어가자니 만사 와해가 되겠어서 오도 가도 못하고 그대로 있던 형편을 역력히 고 하는데, 연희는 아무 말 없이 두 눈에서 더운 눈물이 더벅 더벅 떨어져 옷깃을 적시더라. 김씨부인이 넋이 없이 앉아 듣다가 두 아이의 등을 뚝뚝 두드리며,

"에그, 기특들 한지고! 오냐, 걱정말아라. 고생이 진하면 낙 이 오는 날이 있느니라. 내가 너희 파혼한다는 말을 듣고 만만불가한 줄로 말하였건마는, 네 아비는 저 신부의 집에 서 먼저 퇴혼 언론하는데 감정이 생겼는지, 첫대 허락을 하 여놓아서 자식들이 이 고생을 하게 만들어 놓았구나! 그러 나 너희들이 내게 와 있는 것을 만일 알게 되면 필경 좋지 못한 효상이 생길 것이니 너희들은 꼼짝 말고 이 방안에 꼭 들어 있거라. 내가 하인배를 단속하여 이대 말을 일체 밖에 못 내게 하고, 내가 지금 슬며시 문안으로 들어가 눈치를 좀 보마."

"아주머니께서 잘 주선하여 주시기만 바라옵니다."

"오냐, 걱정 말아라. 그러나 그렇지 아니한 일이 있다. 너 희 둘이 기왕 저 모양으로 된 터에 잠시라도 피차에 혐의스 러운데 아주 오늘 냉수 한 그릇을 떠놓고 성례를 하는 것이 가하다."

하고 즉시 대례를 설비하고 영록과 연희로 교배를 시킨 후 자기는 분분히 교군을 차려 친정으로 들어왔더라.

의관이 그 아들을 잃고 두 눈이 캄캄한 중, 황가의 야료김 에 창피 막심하여 어찌할줄 모르고 있는 중 자기 매씨가 들 어오는 것을 보더니,

"누님, 들어오십니까" 우리 집에는 큰 변이 났어요."

"글쎄다. 하인들 편에 말은 대강 들었다마는, 그 일이 어찌 된 곡절이냐?"

"무엇이 어떻게 된 곡절이야요. 서씨가에서 퇴혼한 것은 누 님께서도 다 알으셨지요?"

"알았지, 그래서?"

"그 집에서 퇴혼을 그 모양으로 하더니 이 뒷집에서 살던 황공삼이라는 자와 혼인을 정하여 오늘이 성례할 날이더랍 니다."

"황공삼이라니, 부산으로 가서 사는 난봉놈이로구나."

"예, 그자올시다."

"그래서, 오늘이 성례날인데 어떻게 되었단 말이냐?"

"엊저녁에 이슥토록 영록이가 제 방에서 글을 읽다 자기에 어디 갔으랴 하고 아무 뜻도 아니하였더니, 오늘 동이 막 트자 서씨가에서 신부가 부지거처라고 야단법석이 나더니, 우리 집으로 영록이 있고 없는 것을 알러 하인이 왔기에, 나는 영문도 모르고 되 큰소리를 하며 그 하인놈을 꾸짖었 더니, 웬걸요, 이놈이 참말 없어졌읍니다그려. 그 자식이 평 시에 아비의 말을 잘 복종하기에 그런 거조 할 줄은 꿈도 아니 꾸었더니, 이놈이 이런 짓을 하였으니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서씨 가에서는 자기 딸을 당장 찾아놓으라 고 별별 야료를 하는 중, 제일 황가놈은 별별 흉악한 소리 를 다 하며 저리 야단을 한다니 이 노릇을 어떻게 하면 좋 단 말씀이오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저희만 자식을 잃었다더냐" 우리도 자 식을 잃고 기막히기는 피차 일반인데 뉘게 지다위란 말이냐

" 오냐, 그 집에서 누가 와서 또 무엇이라고 하거든 대답할 말이 없어 걱정이냐" 글쎄, 너부터 지각이 없느니라. 그 집에서 아무리 퇴혼 의논을 하더라도 네가 나 이르던 말대로 허락 을 말 일이 지, 앞 뒤 생각을 도무지 아니하고 그 모양으로 쾌쾌히 대답하더니, 잘 되었다. 잘 되었다. 아무리 자식이기 로 무엇이 잘못하였다고 나무래" 이애, 걱정 말고 어디 가 있던지 내버려 두어라. 그 지경으로 저희들의 뜻이 합하여 나간 이상에 만 번 찾으면 무엇하니" 그 신부가 황가에게로 다시 갈줄 아느냐" 열이 나서 찾으려는 황가가 더욱 우습다.

제가 무슨 턱으로 찾아" 그럴지라도 성례를 하였다거나 함 례를 한 신부가 그 모양으로 갔으면 넉넉히 제 계집이라고 찾으려니와, 무슨 턱으로 제가 찾아놓아라 말아라 한단 말 이냐?"

"그 집 신부 일사는 하여하고, 이놈의 거취나 알아야 아니 합니까" 어린 것이 아무 철없이 어디로 가서 무슨 지경이 되었는지 그 아니 걱정입니까?"

"그야 아비된 마음에 심려가 되겠지마는 이 일이 모두 너 의 자취니라. 신부로 말한대로 내가 길러 내나 다름없이 익 숙히 알지마는, 아이들이라 할 수 없이 영리하고 분명하여, 시비 경위를 넉넉 분석할 만하고, 또 우리 영록이는 여간 똑똑하냐" 부모의 처리하는 일이라도 의리에 벗어나면 행치 아니할 줄을 깊이 짐작하기로, 내가 무엇이라고 하더냐" 그 집에서는 아무리 미친년의 말에 고혹하여 퇴혼을 하려 한 대도 우리는 결코 허락할 일이 아니라고 아니하더냐" 어른 이 저희들에게 실체를 하여놓고 그 지경으로 나간 저희들을 무슨 입으로 나무라느냐?"

"글쎄올시다. 누님 말씀을 진작 들었더면 자식고생을 아니 시킬 것을, 그 집에서 하는 양이 하도 아니꼬와 선뜻 허락 을 하였읍니다그려. 그 놈이 그 신부를 데리고 누님댁으로 나 갔나 믿었더니, 누님댁에도 아니 가고 어디로 갔을까요"

서씨가에서도 그 말을 잃고 초절을 할 뿐 아니라 소위 황가 가 어떻게 야료를 하는지, 저자가 필경 경찰서까지라도 호 소를 할 모양인데 그 아니 큰일이오니까?"

김씨부인이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을 하여보더니,

"오냐, 걱정 말아라. 황가가 만일 경찰서에 호소를 하여 네 게 무슨 침탈이 돌아오거든, 내가 나서서 다 말하마. 먼저 사주 왕래까지 하여 뇌정한 혼인이 정작이지, 뒤뿔치기로 제가 다 무엇이란 말이냐?"

그때 마침 대문 밖에서,

"이리 오너라."

소리를 메붙이는 듯이 지르더니,

"이댁 영감 여쭈어라."

하는지라 김의관이 그 매씨와 하던 말을 중지하고 마주 나 아가며,

"누구시오" 저 사랑으로 들어오시오."

황공삼은 연치가 창창한 소년일 뿐더러, 한동리에서 살때 에 저의 어른이 김의관과 막역지우라, 조석으로 추축하던 터이라, 김의관이 황공삼을 친자질같이 길러내다시피 하였 거늘, 사랑으로 와락 달려들더니 반말 지껄이로 한바탕 야 로를 한다.

"여보, 당신은 무슨 뾰족한 수로 가식놈 시켜 남의 계집을 빼돌리오" 당장 찾아놓아야지, 아니 찾아놓고는 못 뱃길걸."

"이 사람, 자네가 어떻게 하는 말인가" 내 자식을 시킨 일 도 없거니와 내 자식이 뉘 계집을 빼어간 여부도 모르거늘, 찾아놓아라 말아라 하며 딱딱 으르노?"

"압다, 점잖은 이가 뻔뻔도 하오. 당신 아들이 뉘계집을 빼 어갔는지 정녕 모르오" 똑똑히 좀 들으시려오" 서주사의 딸 은 즉 내 계집인데, 밤사이로 간곳이 없자 당신 아들도 도 주를 하였으니 그 일이 뉘 조화요" 아무 관계가 없으면 하 인은 왜 각처로 찾아보냈읍더니잇가" 공연히 어름어름 말고 서 진작 찾아놓아."

"이 사람, 그 신부로 말하면 내 자식과 정혼을 하여 주단 거래까지 하였다가 졸지에 퇴혼은 하였네마는 자네 처라는 말은 금시초문이고, 또는 그 신부 도주하자 내 자식이 없으 니까 데리고 간 줄로 말을 하나보네마는 내 자식이든지 그 신부를 찾기 전에야 어찌 알아서 빼어갔느니 찾아놓으라 하 노" 이 사람, 내가 자네 선장과 죽마고교로 친밀히 지냈은 즉, 고인지자 즉오자로, 자네가 곧 내 자식 일반이어늘 말버 릇을 함부로 하여가지고. 응, 괴악한지고!"

황가가 소리를 버럭 질러서,

"당신이 어떻게 하는 말씀이오" 당신이 우리 선친 친구기 에 그렇지, 좀더 친근하였더면 우리 어머니까지 빼어가겠구 려. 오늘 내로 아니 찾아놓는다는 큰 봉변하오리다. 말버릇 을 잘하도록 행세를 하지, 그까짓것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 은 약과요, 약과야! 옳지, 사주까지 보냈더란 말 하는 것을 들으니까 자기 며느리로 알고 자식 시켜 빼돌렸군! 사주를 백 번 보냈으면 퇴혼한 이상에 소용이 무엇이야. 정작 혼인 택일까지 하고 오늘 성례하려던 나는 어디로 가고! 길게 말 할 것 없이 이렇게 옥하사담할 것 없이 경찰서로 가서 재판 을 합시다."

김의관이 기가 막혀 대답을 못하고 얼굴만 붉으락푸르락할 뿐인데, 김씨부인이 안문 안에서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듣다 가 미닫이를 드르륵 열고 들여다보며,

"여편네가 남의 집 사내 양반에게 말하는 것은 실례지마는, 저 양반은 조그맣서부터 한동리에서 길러내다시피 한 터이 니 무슨 흉허물이 있사오리까" 그런데 지금 내 아우와 수작 하는 것을 대강 들었거니와 서시가 규수 있고 없는 것이 댁 에 무슨관계며, 내 아우가 무엇을 알았다고 재판을 하자고 하시오?"

"여보, 당신이 나를 길러내지 말고 젖을 먹였기로, 부인네 가 나서서 말씀이 무슨 말씀이요?"

"동기 일신인데 아무리 남녀는 다를지인정 내 아우가 당한 일에 말을 좀 못할 것이 무엇이요" 여보, 젊은 양반이 너무 이러지 말으시오. 장가를 들려면 어디 가합한 신부가 없어 서 하필 남의 완정한 신부에게 장가를 들려고 몰경계한 거 사를 하오" 우리는 서씨가에서 퇴혼을 청하기로 그 집에서 어떻게 할 처사를 보자고 내버려둘 따름이지, 김지와 성례 를 시키는지 이지와 성례를 시키는지 도무지 몰랐거늘, 그 신부 어디로 간 것을 왜 이집에 와서 지다위를 하며 재판을 하자 마자 하오?"

"그 신부를 이 주인의 아들이 데리고 도망을 하였으니까 그렇지요."

"그 신부를 내 조카가 데리고 간 것을 어찌 그리 분명히 알으시오" 내 조카가 서씨가에를 어려서는 한집안처럼 다녔 지마는, 근자에는 일체 투족을 한적이 없고, 조카놈 뿐 아니 라 이 집 하인배도 노소 물론하고 그 집에를 왕래치를 아니 하는 터인즉, 그 신부 가고 아니 간 것을 알 필요도 없고, 내 조카로 말하면 그 놈이 지각이 없어서 어디로 갔는지 어 른에게 온다 간다 말이 없었으니, 그 신부 데려간 여부를 어찌 안다고 이집에 와서 지다위를 하시오."

황공삼이가 건넌 산 꾸짖기로,

"어, 별일 다 보았네. 사네들 말하는데 아낙네가 참섭이 무 슨 참섭이람?"

눈을 심술이 뚝뚝 듣게 뜨고 김씨부인을 건너다보며,

"어서 들어가시오. 아낙네가 참섭할 일이 아니오. 당신이 이 모양으로 성군작당 말한다고 내가 할 말 못할 리도 없 고, 재판 못할 리도 없소. 아무 소용 없으니 공연히 내 입에 서 언짢은 말 나오기 전에 어서 들어가시오."

"여보, 댁은 어머니도 없고 할머니도 없소" 내가 나이로 해 도 댁 어머니 연기가 넉넉하고, 동리간에서 한 집안처럼 지 낸 터에 말버릇을 함부로 해가지고, 에, 해괴해라. 재판을 하거나 먼지판을 하거나 생각대로 하시오그려. 누가 왼눈이 나 깜짝할 줄 아는구먼. 우리 집에 와 떼가 웬 떼야" 우리 영록이가 그 집을 왕래하여 그 신부와 잇삿이라도 남 보는 데 아울러 보았으면 오히려 어찌해" 도무지 그 집과 상관이 엇는 터에 왜 와서 떼야" 우리 영록이도 남만치 똑똑한 것 이 저와 단단히 정혼하였던 신부가 다른 사람에게로 시집을 가게 되니까 분하고 화나서 어디로 간 것인데, 그 자식이 남들 알기에는 시들해도 우리 집에서는 금지옥엽같이 여기 는 것이요. 왜 자세 알지도 못하고 그것에게다 향하여 할 소리 못할 소리를 모두 하오" 정장을 한다면 누가 그리 겁 을 내오" 생각대로 하구려. 정장을 해서 정확한 증거를 잡아 내야지, 만일 그렇지 못하면 내 손에 못 배기리다."

"이런 제기,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지, 계집 잃고 눈이 뒤집 히게 된 나보다 한층 더 뛰는걸. 정장을 하든지 말든지 내 마음대로 할 것이지 당신의 건고 들을 내가 아니오. 걱정 말으시오. 필경 어느 끝이 어디 닿든지 귀정을 날이 있을 터이니, 얼마나 기승을 부리고 잘 배기나 봅시다."

하더니 뒤도 아니 돌아보고 나간다.

김씨가 자기 동생을 향하여,

"이애, 안으로 들어오너라. 무슨 이야기 할 일이 있다."

"예, 들어가겠읍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김의관이 황가가 와서 야료하는 것은 몇째 걱정이오, 제일 애가 타서 못 견딜 일은 영록의 종적을 모름이라. 황가 간 뒤에 넋이 없이 앉았다가 자기 매씨가 무슨 말을 이르려고 들어오라고 하기에 즉시 들어오니, 김씨가 조용히,

"이애, 이 일을 어찌하여야 옳겠느냐" 저놈이 정녕 그대로 있을 리 만무하여 정장을 하고야 말 터인데‥‥‥."

"정장하면 당했지, 억지로 어떻게 합니까" 그까짓 일은 시 들해도, 영록이 놈이 어디가 잘 있는지 못 있는지, 죽지나 아니하였는지 꼭 미칠 듯 싶습니다."

"이애, 그는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 애들이 지금 우리 집 에 와 있다."

김의관이 일변 놀라고 일변 반기며,

"그 애들이 누님댁에 있다뇨?"

"에그, 요란스럽다. 가만히 말을 해라."

"누님댁에 하인들이 첫새벽에 찾아갔다 왔는데 그러면 누 님께서 속이셨읍니까?"

"하인 왔을 때에는 없었지."

"그러면 어떻게 된 일이야요" 그 애들이라니, 저집 처녀가 참말 그놈과 같이 갔어요?"

"이야기를 다 하자면 기가 막힌다."

하더니, 자기가 하인 급보를 듣고 즉시 떠나 들어오다가 고개 너머서 영록과 연희 만나던 근경을 차례로 말하고 착 수 성례시켜 집에 감추어둔 일을 설파하니,

"저놈이 알면 큰 봉변을 할 터인데 어찌하자고 일을 그렇 게 하셨읍니까" 그 처녀 아니면 우리 영록이 장가 못 들일 라고 그 모양으로 구구히 성례를 시키셨읍니까?"

"저런 말이 있나" 혼인을 말로 흥성하듯 무르는 것이 아닌 데, 어른이 되어 저희들이 그른 거조를 한 대도 아무쪼록 엄금함이 가하거든, 황차 저희들은 의리를 삼엄하게 잡고 죽기로써 변경치 아니하려거늘, 어찌 그 뜻을 성취하여 주 지 아니한단 말이냐" 그런 몰각한 말은 다시 말고 선후 방 침이나 생각하여라."

"누님 말씀이 그르시다는 것은 아니오나, 황가 놈의 억지가 필경 그대로 있지를 아니할 터이으니 그 아니 걱정이오니 까?"

"그놈이 정소곧 하면 네집 내집 할 것 없이 엄밀히 수색을 할 터인즉, 우선 저 아이들을 우리 집에 두어서는 발각될 염려가 있은즉, 이 길로 기별하여 광주산성 우리 외가로 가 있게 하자."

"기왕 그리된 일에 어떻게 하는 수가 있읍니까" 누님 처분 대로 하십시오."

"그렇지 않다. 기별을 하자하니 하인이 하나 둘 알아서 소 문 퍼지기가 십상팔구인즉, 바로 내일 첫 새벽에 내가 집으 로 나아가서 조차하는 편이 옳겠다. 황가가 정소를 하기로 밤 동안에 무슨 일이 있겠느냐?"

이날 영록이는 저의 고모가 문안으로 들어간 후 그 집 뒷 방에 연희와 같이 꼭 숨어 있어 숨도 크게 못 쉬고 있는데, 밤이 삼경 가량이 되어 밖에서 술렁술렁하며 문 열어 부치 는 소리가 덜걱덜걱 나더니 안잠자던 노파가 뒷방으로 뛰어 들어오며,

"서방님, 큰일났읍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응, 왜 그러나?"

"웬 놈들인지 모두 머리에 흰 수건을 질끈질끈 동이고 긴 몽둥이를 각기 휘두르며 문을 박차고 들어와 지금 안방"건 넌방을 구석구석 뒤집니다."

영록이가 그 말을 듣고 그 대답할 여부없이 연희 손목을 이끌고 뒷문으로 뛰어나아가 신발도 미처 못 신고 뒤꼍 수 도 구멍으로 기어 나아가 산 길로 천방지방 도망을 하여 어 느 바위밑에 가 엎드려 가만히 동정을 살피니, 사면이 고요 하여 아무도 쫓는 사람이 없는지라 그제야 숨을 돌려,

"여보,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소" 그놈들이 다른 놈이 아니 라 필경 황가가 우리 여기 와 있는 것을 알고 수색하러 보 낸 모양이니, 도로 들어갔다가는 봉변을 기어이 할 터이요, 향하여 갈 곳도 없은즉 이 아니 딱하오?"

"죄많은 이 사람이 진시 죽어 이 세상 버렸더면 귀중하신 터에 오늘날 고초를 아니 당하실 것을, 쓸데 없는 인생이 살아 있다가 이 지경을 당케 하오니, 진실로 몸을 둘 곳이 없나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요" 이 사람으로 인하여 부인이 고초를 당하였다 함은 가커니와, 부이으로 인하여 이 사람 고초 당 한다는 말씀은 만분 근리나 하오" 피차에 뉘 탓 할 것 없이 모두 우리의 팔자 소관이니 장황히 말씀 말으시고 당장 박 두한 화색을 모면할 도리나 생각합시다."

"‥‥‥."

"자, 우리가 이곳에만 이렇게 있다가 날이 밝으면 오도 가 도 못할 터이니 부인은 너무 심려말으시고 이곳에 가만히 은신하여 있으면, 내가 비밀히 도로 가서 그놈들 동정을 살 펴보고 와서 가든지 은든지 좌우간 하십시다."

하고 여나문 걸음을 채 못 가서 사람 몰려오는 자취가 우 루루 나는지라, 영록이가 내놓던 발길을 도로 움츠러뜨리어 언덕 밑으로 가서 연희와 한 뭉치가 되어 엎드려 있느라니, 그 사람들이 점점 그 아으로 가까이 오는 모양이라.

"여보, 저놈들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데, 우리가 이 곳에 그대로 있다는 발각되기가 첩경 쉬우니, 저놈들이 더 가까 이 오기 전에 우리 저 아래로 진작 멀찌기 가십시다."

"에그,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은가?"

하고 영록의 손목에 매달려 겨드락길로 더듬더듬 내려가다 가 두 사람이 발을 냅다 놓는다는 것이, 위험하게 든든히 놓이지 못한 돌을 디디어 그 돌이 뚜루루 내리 굴러, 둘이 걷잡을 새 없이 곁묻어 따라 내리구르다가 절벽의 솔방울 떨어지듯 뚝 떨어지는데, 인명이 재천이라 죽을 사람이면 세상없이 보호자가 많더라도 의외의 횡래지액으로 죽고야 말고, 살 사람이면 세상없이 위험한 지경이라도 의외에 구 원자가 있어서 살고야마는 것이라. 영록 내외가 내리구르던 그곳은 뚝섬 맞은편 강 위 언덕이라 휘어잡을 나뭇가지 하 나 없고, 위에서 하나가 구르면 둘셋 벗을 청하여 무수히 와르를 내리구르는 목침만한 베개만한 돌 뿐이요, 그밑은 여러 수십 길 되는 강물이라 아무라도 게서 그 모양으로 내 리굴러 놓으면 하릴없이 그 강물에 가 풍덩 빠져 고기 배에 장사를 지내고 말지라. 당장 영록 내외의 내리구르는 광경 을 사람이 곁에서 보았으면 가슴이 한줌은 되고 마음이 아 슬아슬하여 전신에 소름이 쪽 끼칠만한데, 그때는 어두운 밤이라 누가 곁에 있대도 보지를 못하였을 터이요, 본래 사 람도 없으니 저 불쌍한 어린 내외를 누가 달려들어 구원하 여 주리요! 경각내 달린 두 생명이 번개같이 구르다가 급기 탁 떨어져서 넋을 잃다가, 한구한 후에야 정신을 수습하여 눈을 떠서 두루 두루 살펴보나,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는 없고 다만 물결 소리가 두 귀에 들리며 몸이 저절로 흔들리 는지라, 영록이가 손을 내밀어 이리 더듬 저리 더듬 하는데 마침 정밤중에 돋는 달이 동편 하늘로 불그레 올라오며 맑 은 빛이 영록의 가슴에 가득히 비치는데, 그제야 자세 둘러 본즉 아무도 없는 빈 배 안에 두 몸이 담겨 있는지라, 꿈도 같고 생시도 같고 머리 위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요, 눈앞 에는 와글와글 끊는 물결 뿐인데, 사면에 인적은 없고 다만 물새의 꿈꾸는 소리가 이따금 나는지라, 기절하여 늘어진 연희를 흔들흔들 하며,

"여보, 정신 좀 차리오, 여보 여보!"

연희가 그제야 눈을 떠보며,

"에그, 여기가 어디어요?"

"예가 배 안인가 보오. 나도 어찌된 일인지는 정신이 얼떨 떨하오마는 가만히 생각한즉, 우리가 저 위에서 실족하여 내리굴러서 하릴없이 이 강물에 떨어져 죽을 사세인데, 우 리 둘이 죽지 말라는 팔자로 여기 빈배가 있자 배 안에 떨 어졌구려."

"세상에 신기한 일도 있소. 나같은 쓸데없는 여자는 열 번 죽어 관계 없으나 당신은 막중 존귀하옵신 남지신데, 이 배 가 이곳에 있는 것이 천행이 아니오니까!"

"여보, 우리가 천행으로 이 배에 떨어져 생명은 살았소마 는, 날이 밝기 전에 진작 믐을 숨어야 할 터인데 아까 우리 오던 길을 찾자니 저 절벽에를 올라가는 수가 없고, 이 배 안에 그대로 있자 하니 무슨 소조가 또 있을지 모르겠소구 려."

"에그, 참 어떻게 하면 좋은가?"

"이래도 죽고 저리 해도 죽기는 일반이니, 저기 잇는 노를 집어가지고 이리 저리 저어봅시다. 필경 저 건너로 건너야 하겠지."

"에그, 아스시오. 배를 부리는 구경도 못하셨을뿐더러 섬섬 약질이 잘못하다 큰 실수하시기가 쉬우니, 똑 내 의견대로 하시는 것이 가하실 듯합니다."

영록이는 연희 영민한 생각에 무슨 좋은 의견이나 생각 할 줄 알고 반가이 묻는 말이라.

"예, 무슨 의견이요" 좋을 도리만 있으면 그대로 하다 뿐이 요?"

"당초에 이 고생이 모두 누구로 인하여 생겼느냐 하면 천 지간 죄악이 심중한 내 한 몸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온데, 종래 고집을 하여 이 모양으로 있다는 목전에 무한한 화색 이 생길 것이오니, 차라리 이 몸이 죽어 당신에 누가 없으 시게 하는 것이 당연하오니 한 번 결단한 뜻을 막지 말으소 서."

하며 뱃전을 향하여 물로 뛰어들려 하니, 영록이가 깜짝 놀라 연희의 허리를 훔쳐 붙잡고 급한 말로,

"여보 여보! 죽을 제 죽기로 이리 급할 것이 무엇 있소" 내 말을 좀 듣고 죽어도 늦지 아니하오."

"나를 붙잡으시는 것은 인정에 혹 그러실 듯하나 내가 살 아 있다는 둘의 생명이 다 위태하여 장차 어찌 될지 모르 니, 그 지경이면 이는 우리 두 집이 모두 복종 절사되기를 스스로 취함인즉, 이 몸 하나 죽는 것을 조금도 쾌념치 말 으시고 귀체를 보중하옵소서. 아무쪼록 구고 양위분을 효양 하옵시고, 나머지 겨를이 계시거든 이 사람 친부모의 비상 한 고생이나 면토록 하여주시면 죽은 고혼이라도 감격함을 마지 아니하겠나이다."

"글쎄, 이리 앉아서 말을 좀 듣고 죽어도 죽어요."

하며 연희의 허리를 잔뜩 안아 배 가운데로 앉히고,

"내가 할 말은 별것이 아니오. 부인이 지금 이 모양으로 죽 고자 함은 용혹무괴나, 다만 한가지k지는 모르는 것이요. 어 찌하여 그러냐 하면 우리 둘이 이 모양으로 손목을 이끌고 나온 것은 피차에 마음이 합하여 의리를 저버리지 말자 함 인 즉,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것이 사람의 도 리라. 지금 부인이 저 강물에 몸을 던져 세상이 버리면 나 는 무슨 면목으로 홀로 살아 있으리요. 차라리 저 물에 같 이 빠져 죽은 혼이라도 서로 떠나지 아니할 터인즉, 구태여 조급히 굴지 말고 이 배를 끌러 저 건너로 건너가서 차차 무슨 변통을 하는 것이 가할 듯싶소."

연희가 가만히 생각하여본즉 자기가 그 말을 듣지 않고 죽 었다는 정녕코 영록도 따라 죽을 모양이라, 냅뜨던 마음을 스스로 참고,

"이 사람이 죽고자 함은 결코 당신의 구만리 전성을 위함 이요, 일호도 고생을 싫어함이 아니러니, 이 사람 곧 죽으면 홀로 살아 게시지 아니하겠다는 중난한 말씀을 하시니, 도 리어 몸둘 곳이 없어 다시는 죽을 뜻을 아니 두옵나니 심려 말으시고 계시옵소서."

"옳지, 잘 생각하셨소. 죽기는 왜 무단히 죽는단 말이요"

아무쪼록 살아서 내두사를 아니 보고. 그러나 날이 멀지 아 니하여 밝은 터이니 배를 저어 저 건너 육지로 가서 아무데 로 가던지 가봅시다. 설마 사람 살 곳은 골골마다 있읍뉜 다."

하고 절벽 석각에 배 매어놓은 끈을 끄르고 노를 집어 이 리저리 젓는다. 급한 물결을 건너가려면 장정이라도 노를 젓기에 힘이 들어 까딱 실수하면 얼마쯤 하류로 흘러 내려 가거든, 하물며 약질 영록이는 평생에 노를 손에 만져본 적 이 없는 터에, 가벼운 배로 급한 여울물을 어찌 무사히 건 너가리요" 배가 중류에 가 뜨더니 노를 아무리 저으려 하여 도 물결에 채여 마음대로 아니될 뿐 아니라 노 끝이 배 밑 으로 휘어 들어가며, 영록이가 따라 들어가려 하니 하릴없 이 노를 집어 내던지고 뒤로 물러섰더라. 그 배가 끈 떨어 진 뒤웅박 모양으로 만경창파 가운데에서 이리저리 빙빙 돌 며 한없이 내려간다. 그 때가 대낮 같으면 오고가는 내왕선 이라든지 고기 잡는 어선이라도 있어 그 모양으로 떠나가는 배를 붙잡아주련마는, 천지가 적막한 밤이라 연강 포촌 앞 에 충충 들어선 배가 모두 닻매고 잠자는 사람 뿐이라. 영 록이가 겁결에 아무리 목이 터지도록,

"사람 살리오, 사람 살리오!"

소리를 지른들 알아들을 사람이 어디 있었으리요" 천행으 로 그 날 새벽에 물 아래 바람이 슬슬 치불어, 물결대로 가 면 순식간에 서해 바다로 떠내려갔을 손바닥만한 배가, 둥 싯둥싯 동이 활짝 밝도록 간 것이 겨우 노돌 다리 위로 뇌 성벽력 같은 소리가 나며 난데없는 종이 한 장이 머리 위로 빙빙 돌아 배 가운데에 와 툭 떨어지는지라, 영록이가 그 경황없는 주에도 심히 이상하여 한 손으로는 뱃전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그 종이를 집어 보니, 글 석 자가 분명히 씌어 있는데, 이는 곧 자기 장인 서주사의 명함이라 깜짝 놀라 열물만 왈칵왈칵 토하고 엎드려 있는 연희를 흔들흔들 하 며,

"여보, 좀 진정을 하여 이것 보오. 어디로서 장인의 명함이 날아왔소."

연희가 명함을 받아 뒤적뒤적 보다가,

"세상에 이상한 일도 있어라. 우리 아버지 명함이 어디로 해서 예 와 떨어졌을까" 명함이 다른 종이 같이 얇고 가벼 운 것이 아닌즉, 바람에 날아왔을 수도 없고, 육지 같으면 누가 가져왔다고나 하련마는, 이 물 가운데 온 이도 간 이 도 없는데."

"이 일이 필경 하나님 조화나 귀신의 재주로 우리를 경정 시키는 것인데, 우리가 우매하여 개닫지를 못하는 것인가 보오. 그런즉 우리는 아무쪼록 살아나서 장인을 뵈옵는 날 이런 말씀을 여쭙시다."

하여 아무쪼록 연희가 죽을 마음만 아니 주도록 말을 하는 데, 연희가 그 명함을 손에 들고 우두커니 들여다 보며 눈 물이 비오듯 옷깃을 적시는지라 영록이가 만단 위로하며 그 배가 저절로 어디 가 닿기만 바라는 데 물 위로부터 나룻배 한 척이 노를 부지런히 저어 나는 듯이 쫓아오며 소리를 높 이 질러,

"그 배 게 좀 섰거라."

영록과 연희가 그 소리를 들으니 덜미에 벼락이 내리는 듯 정녕 황가가 알고 잡으러 쫓아오는 듯 싶으나 노와사앗대질 을 못하고, 빨리 가든지 더디 가든지 배 처분만 바라는 터 이라. 어찌하는 수가 없어 속담과 같이 잡아 잠수시오 하고 엎드려 있느라니, 곁묻어 그 배가 쫓아와서 뱃전을 턱 붙잡 으며 누가 우둥우둥 올라오는지라 영록과 연희가 겁결에 감 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엎드려 있는데, 그 사람이 연 희 앞으로 가까이 와서 손목을 잡아 일으키며,

"네가 이게 웬일이냐" 얼굴을 들어 나 좀 보아라."

연희가 그 음성을 듣더니 고개를 번쩍 들어보다가 와락 그 사람 앞으로 달려들며,

"에구, 아버지‥‥."

당초에 서주사가 변호사 사무원으로 부산항에 내려가 황공 삼의 집에 주인을 정하고 있으며 재판 일을 기다리더니, 우 연히 몸살이 나서 수일 신음하는데, 공삼이가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진심껏 구원을 하는중, 졸지에 병세가 위독하여 오장을 에이고 혀가 굳어 말을 못하는 것을 마침 그곳 자혜 의원장이 심방차로 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 즉시 황공삼에게 입원 치료케 주선하라 하여 여러 가지로 진찰하여 보고 대 증투제로 약쓴 효험으로 여러 날 만에 간신히 정신을 차려 차려 기동을 하였는데, 입원한 이후로 황공삼이도 현영이 없고, 자기 서울 집에 편지를 여러 차례 부쳐도 도무지 회 답이 없는지라. 궁금함을 못이겨 더 치료치 못하고 원장에 게 퇴원하기를 청하여 공삼의 집으로 와본즉, 사랑문을 첩 첩이 닫았는지라 심히 괴이하여 하인을 불러 묻는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행랑문이 덜컥 하더니 하인놈 나와 인사를 하며,

"나으리, 행차해 계시오니까" 이제는 병환이 쾌차합셔요?"

"오, 나는 나았다마는 너의 서방님은 어디 가셨느냐?"

"서방님께서 일전에 무슨 긴관이 계시다고 어디를 가셨는 데, 아직 환댁을 아니해 계셔요. 서방님께서는 아니 계시지 마는 사랑으로 들어오십시오."

하여 사랑문을 열고 불을 땐다, 쓰레질을 하다, 자리를 까 는데, 서주사는 사랑에 홀로 들어앉았느라니 심히 무료하여 다시 하인을 불러 묻는 말이라.

"이애, 너의 댁 서방님이 어디를 떠나셨으며 떠나 실 때에 아무 말씀도 아니 계시더냐?"

"서방님께서 지난 날 스무아흐렛날 떠나셨는데, 아무 분부 도 없으시고, 다만 며칠 아니되어 오신다고만 하셨읍니다."

"내 말씀은 아니하시더냐?"

"소인은 아무 말씀도 못 들었읍니다."

서주사가 그 말을 하여 머리맡 벼루 밑을 보니까, 무슨 편 지 수지가 하나 있는지라 무심히 집어서 펴보다가 눈이 둥 그레지며 그 편지를 척 접어 하인이 아니 보도록 감추고,

"오냐, 네 방으로 물러가 있거라."

"예."

하인이 제 방으로 들어간 후에 그 편지를 다시 펴서 찬찬 히 보니 이는 곧 자기 부인 임씨의 필적인데, 그 사연이 분 명한 자기 편지 답장이라.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보고 또 보다가 혼잣말로,

"세상에 이상한 일도 있다. 내가 병이 들어 집에 편지 한 적이 없는데 답장이 웬일이며, 사연에 연희 혼인을 이미 퇴 하였으니 아무 염려 말라는 구절 편지의 말과 같이, 신랑을 어서 불복일로 올려보내라는 구절, 연희는 저사하고 말을 아니 들으려 하니 어찌하면 좋을는지 모르겠다는 구절이 모 두 천만 뜻밖의 말이니, 어 이것 큰일났고! 내가 재판은 못 한대도 지에를 바삐 좀 올라가 보아야 하겠다."

하고 그 날 밤 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여 올라오더라. 황공 삼은 서주사의 필법을 모방하여 위조 편지를 서주사 어머니 와 부인에게 보내어 연희 혼인을 퇴하고, 제게로 후취를 주 도록 하여, 서울서 오는 답장은 일변 감추어 서주사를 아니 보일 뿐 외라, 서주사 앓는 것을 좋은 기회로 여기어 약에 독한 물건을 혼합하여 먹이어 정신을 잃고 혼도하자, 자혜 의원장이 마침 와보고 데려가니, 제 마음에 얼마쯤 저옹히 여기는 중 일변 생각하기를, (제가 그 독약을 먹었은즉 아무리 치료를 잘한다 해도 희 생키 어려울 터이요, 희생을 한 대도 하루 이틀에 추서지를 못할 터이니, 그 동안에 서울로 가서 제 딸과 성례를 하여 합례까지 하여놓았으면 제 자식을 보기로 나를 설마 어찌할 라구") 하고서 분분히 서울로 떠나 올라가느라고, 편지수지 나지 는 것을 미처 못 간수하였더라. 급히 서울을 득달하여 성례 를 하려는데 철옹성같이 믿고 조금도 의심 아니하였던 신부 가 부지 거처로 없어졌는지라 눈이 뒤집히고 분이 탱중하여 제 하인과 서주사의 집 하인을 사면 각처로 늘어놓아 찾아 보며, 김의관의 아들 없어진 것을 트집을 삼아 천둥같이 땅 땅 으르며 야단법석을 하면서도, 제 속으로 은근히근심하기 를, (다 쑨죽에 코 쳐지기기로, 이런 놈의 일도 있나" 고 박살 할 김가놈이 꾀어내지를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 없이 나와 혼인을 곧잘 했을 것을. 고런 씨 못 받을 놈의 자식 보았나!

제가 아무리 데리고 도망을 하였지마는 승천입지는 못하였 을 터이니 내 손에 잡히고야 말리라. 고놈은 철 모르는 것 이 제 계집 되려던 신부가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된다니까 꾀 어서 데려가기가 오히려 용혹무괴어니와, 그년의 고모년이 우습지 아니한가! 옷자락이 몇 쪽이나 되는지 아니꼽게 출 반주하여 지껄여가지고. 궐녀의 행동이 아무래도 수상한즉 내가 경찰서에가 고소를 하여 단단히 심문을 하도록 한 터 이다. 아니 그것은 그렇지마는 한 가지 걱정이 서주사가 병 이 소복되어 서울로 올라오거나 이런 소문을 듣게 되면 죽 도 살도 다 틀릴 터인데, 경찰서에 고소를 하였다가, 관청 일이라 하는 것이, 매양 여러 날 지체되기가 쉬운데 미처 처결되기 전에 서주사가 올라오면 내 정적이 모두 발각될 터이니, 아서라, 정장할 것 없다. 위풍으로 정소를 하다고 으르기만 하고 주먹다짐을 하여 족불리지로 그 계집아이를 찾고야 말겠다.) 하고 김의관 집에를 뼈염도리로 가서 길길이 뛰며 야료를 하다가 김씨부인이 나서서 말막음하던 것이 종래 의심이 나 서 김의관을 끌어 앞세우고 압구정으로 나아가려 하니, 김 의관이 무엇이라 방색할 말이 없어 부득이나서기는 하였으 나 속마음으로 은근히 겁이 나기를, (내가 아니 가려면 이놈이 더욱 의심을 내어 저 혼자라도 가 보고야 말 터인데, 저것들이 철모르고 저의 고모댁을 영 고탑만치나 여기어 탄평히 있을 모양이니 큰 봉변 나지를 아니하였나" 누님게서 먼저 나아가셨으니까 설마 미리 그애 들 종적을 감추어주시기는 하셨을 터이지. 아니, 누님께선들 황가가 정소곧 하면 우리 집과 내외 종척의 집을 모두 수색 할 줄은 짐작하시겠지마는 오늘 이렇게 급자기 황가가 나아 갈 줄은 뜻을 못하셨을 터인데! 에라. 사람이 너무 나약하면 못쓰느니라. 저놈과 같이 가보아서 그 애들 종적이 발각 아 니되면 좋고, 그렇지 못하여 저놈의 눈에 뜨이는 날이면, 저 노은 성례를 못하였고, 우리 영록이는 성례를 하여 합궁까 지 하였으니 쾌쾌히 말하여 지지를 아니하여야 하겠다.) 이 모양으로 마음을 도사려 먹고 압구정에를 나아갔더라.

김씨부인이 황가와 그같이 언힐을 하다가 자기 집으로 급히 나오기는, 황가가 만일 정소를 하면 경관이 자기 집까지 수 색하기가 쉬운즉, 진시 타처로 옮기어 종적을 감추어주리라 하였더니, 중로에서 하인의 급보를 듣고 집으로 창황히 와 본즉, 밤 동안에 초한 풍진이나 겪은 듯이 안팎 문짝이 떨 어지고 찢어져 턱턱 자빠지고 농장 의거리가 모두 깨어졌는 데 안잠자는 노파가 마주 나오며,

"에그, 마님, 이를 어찌합니까?"

"이것이 웬일인가?"

"에구, 간밤에 강도가 들어와서 댁 세간을 모두 도둑하여 갔답니다."

"그까짓 세간은 잃으면 대사인가마는, 저어, 여보게, 이리 가까이 좀 오게."

하더니 귀에다 입을 대고 가만히,

"여보게, 다동댁의 새 서방님과 새 아씨는 어디 가 숨어있 나?"

노파가 기막힌 대답으로,

"이런 변 보십시오. 처음에 강도놈들이 우루루 몰려 오는 것을 보고 제 생각에는 문안서 또 그 서방님과 아씨를 찾으 러 오는 줄 알고 급히 여쭈었더니, 두 분이 황황 분주히 뒷 문으로 나아가셔서 수도구멍으로 기어도주를 하시더니, 어 디로 가셨는지 이때까지 도무지 소식이 없읍니다그려."

김씨가 깜짝놀라며,

"그러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면 찾아보기가 좀 하지. 아 마 어느 덤불에가 숨어 있어서 집에 무슨 일이 그저 있는 줄 알고 못 들어오나 보구먼."

"마님께서 그 서방님 댁에 와 계신 것을 소문내지말라고 당부는 하셨고, 누구를 시켜 찾아봅니까" 마음에만 답답해서 이때까지 지냅니다."

"이 노릇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아무 철모르는 것들이 겁 결에 뛰어나가서 고생을 여북 할까! 고생은 고사하고 오래 지 아니하여 큰 봉변이 있기가 쉬운데, 어디가 깊숙이 은신 이나 하여 있었으면 좋으련마는."

그 즉시 노파를 데리고 담 뒤로 돌아가서 이리저리 형편을 보아가며 숨을 만한 곳마다 모조리 뒤져보다가. 필경 종적 을 모르고 무한 걱정을 하며 집으로 들어오는데, 황가가 자 기 동생 김의관을 끌고 무슨 일이 당장 날 듯이 달려 들어 오더니, 불문곡직하고 내정으로 들어와 김씨부인을 딱 으르 며,

"여보, 공연히 이러지 말고 내 계집을 어서 내놓으시오."

"저분이 미쳤나, 실성을 했나" 댁 계집이 누구인데 내게 와 서 내놓으라시오" 젊은 양반이 경계없이도 함부로 덤벙이 오."

"내 계집 나 찾는 것이 경계가 아니오" 공연히 진작 내놓 아야 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는 좋지 못하리다."

"여보, 댁 생각대로 하시오. 아무 겁 없소. 필경 서씨집 규 수를 댁 계집이라고 말하나 본오만는, 그 규수가 우리 집에 없으니까 장황히 할 말은 없으나 그 규수로 말하면 우리 영 록이나 댁이나 정혼하였기는 일반이니, 누구든지 먼저 성례 하는 사람이 차지할 것인데, 댁에서 투철히 계집이라고 나 설 것은 무엇이요?"

"어째 못 나서요" 그래 나와 영록인지, 고 발길자식과 그 신부에 대한 권리가 똑 같단 말이요" 뻔뻔스럽게, 하는 말을 들은즉 분명히 그 규수를 이 집에 감추어둔 게로군."

하며 불문곡직하고 안방으로 뛰어들어가, 다락 속으로 벽 장 속으로 건넌방으로 부엌 광 속을 모조리 뒤지다가 다시 김의관과 시비를 한다.

"여보, 나잇살이나 자신 이가 행세를 음흉하게 말고 어서 바로 토설을 하시오."

"이 자식, 이 후레자식, 나도 삼대 독자를 잃어버리고 열이 나서 찾으러 다니는데 무슨 말을 바로 하라 하느냐" 아니할 말로 네 말과 같이 내 자식이 그 규수와 도망을 하였더라 도, 네가 와서 넉넉한 말이 무엇이야" 너는 그 규수와 혼인 을 정했든지 아니했든지 알 수가 없다마는 내 자식과는 벌 써 몇 해 전에 합사주까지 하였은즉, 설혹 어른들이 열백 번 퇴혼을 하려한대도, 저희들이 말을 아니 듣고 같이 도망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면 어른들도 할 말이 없고, 더구나 너야 아니꼽게 무슨 턱으로 투철히 내 계집이라고 나선단 말이냐?"

"이애, 이말 좀 보아라. 남의 계집을 빼돌려 제 자식과 도 망을 시키고 적반하장으로 되짚어 큰소리를 한다."

하며 연치이니 존장이니 다 불계하고 함부로 욕설을 하며 한참 야료를 하는데, 제 심복으로 데리고 올라온 하인이 숨 이 턱에 닿아서 오더니 대문 밖에서,

"서방님, 서방님."

하고 황공삼을 부르니, 공삼이가 제 하인의 음성을 듣고 마주 나아가,

"너 어찌해서 이렇게 급히 와서 부르느냐" 서주사 댁에서 신부 어디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더냐?"

하인이 가까이 와서 공삼의 귀에다 입을 대고 무어라 무어 라 두어 마디를 하니까, 공삼의 눈이 둥그래지며 아니 아무 말 없이 그 하인과 같이 영등포 가는 길로 나는 듯이달아난 다.

이때에 김의관 남매는 황가의 거동을 보고 더럭 겁이나서,

"누님, 저놈이 웬일이오니까" 저 하인이 와서 무엇이라고 하더니 저 모양으로 검다 쓰다 말없이 급히 가니 그 아니 기상하오니까" 그러나 이 애들은 어디 가있읍니까" 압다, 그 놈 집 뒤짐할 때에 그 애들 어디 있는 데는 모르고 은근히 어찌 겁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이애, 그놈 야단하는 통에 미처 너더러 이야기를 못하였다 마는, 간밤에 나 없는 승시하여 강도 놈들이 돌입하여 우리 집 가산 집물을 모두 도둑하여 가는 통에, 그 애들은 문안 서 저희들을 잡으러 나온 줄 알고 뒤꼍 수도 구멍으로 빠져 서 몸을 피하였다는데, 이때까지 들어오지를 아니하여서 내 가 집안 하인들과 이때까지 사면으로 찾아보아도 어디로 갔 는지 싹이 도무지 없구나."

"에구머니, 그러면 인제는 큰일났읍니다. 필경 황가의 하인 놈이 그 애들 어디 가 있는 소문을 듣고 급히 와서 통기를 하니까, 그 놈이 그 모양으로 쫓아간 것이올시다. 그래, 저 런 못된 자식, 이 근처 어디 있다가 도로 들어오지를 않고 어쩌자고 멀리 번져갔다가 저 봉변을 당하노!"

"에그 참, 그 지경 되었으면 어떻게 하여야 좋으냐" 불들리 기곧 하면 저놈에게 어린 것이 죽을 곤경을 겪겠구나. 이애,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빨리 쫓아가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놈이 어디로 갔는 줄알고 쫓아가오?"

"지금 얼마나 갔겠느냐" 급히만 쫓아가면 응당 만나기도 쉽겠고, 또 그놈이 우리 영록이를 붙잡으면 자연 왁자지껄 할 터이니 그 신부는 배어갈지라도 네가 대들어 영록의 몸 에 우악한 매가 아니 가게 하려무나."

김의관이 자기 매씨의 재촉도 당할 뿐 아니라, 자기 마음 에도 어찌 황망하던지 아무 연구 여부없이 영등포 편으로 숨이 턱에 닿게 쫓아가며 사람을 만나는대로,

"여보, 이리로 나이 스물두엇 되어 보이고 옥색 삼팔두루마 기에 중절모자 쓰고 새 구두 신고 가는 사람 보았소?"

하고 어떤 자는,

"나는 자세히 못 보았소."

급기 영등포 정거장에를 당도한즉 부산으로 내려가는 차가 막 떠나가려 하는데, 힐끗 보니까 황공삼이가 기차안에 앉 았는지라, 김의관도 표를 사가지고 그 차에를 오르려 한즉 벌써 기적 소리가 삐익 나며 차가 떠나가는지라, 망발의 발 로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김의관이 우두커니 서서 나는 듯이 가는 차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혼자 생각하는 말이라.

(어,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히 왔더면 저 차를 타고 쫓아갔 을걸. 그러나 저놈이 저 모양으로 급히 차를 타고 가노" 아 무리 궁구를 하여보아도 짐작할 수가 없는데, 아마 우리 영 록이가 그 신부를 데리고 이곳에 와 있는 것을 쫓아와서 붙 들어 싣고 저의 집으로 가나보다. 내가 예까지 아니 왔으면 이어니와 예까지 와서 저놈 가는 것을 확실히 보고야 모르 는 체하고 도로 갈 수가 있나! 만일 내가 모르는 체하고 도 로 갔다가 저 몹쓸 놈이 우리 영록이가 살해하면 그런 눈에 서 피 나올 일이 있나! 오냐, 내게 차비할 돈은 넉넉히 있으 니 이 다음 차를 타고라도 쫓아가서 시원히 내 눈으로 보고 야 말겠다.) 하고 차시간을 눈이 빠지게 기다려 떠나가느라고 자기집 에, 그렇게 가노라 통기도 못하고 차에 올랐더라.

그때에 서주사는 황공삼의 집에서 자기 부인의 필적을 보 고 의심이 더럭 나서 급급히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날이 막 밝자 차가 노돌 다리를 당하여는 기관수가 기관을 틀어 전속력으로 아니 가고 천천히 건너가는 중, 강물을 내 려다보니 물 위로서 낚시 니루 한 척이 둥싯둥싯 떠내려오 는데 사공도 없고 다만 어린아이 돌 뿐이라 심중에 심히 이 상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자기의 딸 연희와 자기의 사위될 김의관의 아들 영록이가 분명한지라, 급한 마음대로 하면 차에 뛰어내려서라도 만나보련마는, 육지에서라도 기차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려든 하물며 강물 위 차 안에서 어찌 뛰어 내리리요" 조급한 마음을 억제하고 남문 정거장에 와 내려 서 되짚어 인력거를 타고 노돌로 나아가 독선을 잡아 타고 그 배를 쫓아가본즉 과연 영록과 연희라. 영록이 탄 배를 자기 탄 배에 매어 달고 뛰어 들어가 얼싸안고,

"이애, 연희야, 너 이게 웬일이냐?"

연희가 십생 구사 중에 저의 아버지를 만나 어찌 반갑고 기쁘지 아니하리요" 저의 아버지 품에 푹 안기며,

"에구, 아버지."

서주사가 기가 막혀 일변 두 아이를 자기 타고 온 배로 옮 기고 일변 사실을 묻는다.

"이애, 연희야, 네가 웬 곡절로 이 지경이 되었느냐?"

"에구, 아버지, 저는 아버지께 죽을 죄를 지었읍니다."

하고 흑흑 흐느껴 울기만 한다.

"죄는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냐" 울지 말고 말이나 하여 라."

"‥‥‥‥."

"이 자식아, 갑갑하다. 왜 말을 아니하느냐?"

연희가 울음을 그치더니, 당초에 저의 어머니"할머니가 관 상쟁이 말에 고혹하여 퇴혼하려던 말로, 저의 아버지의 편 지에 혼인 옮기어 정하자는 사연을 보고 저의 외조 임통정 을 청하여 김의관 집에 보내던 일을 역력히 고하니, 서주사 가 깜짝 놀래어,

"저런 변괴가 있나! 내가 그 동안 앓느라고 세상을 몰랐는 데 편지는 무슨 편지를 하였단 말이냐" 혼인을 인륜 대사인 데 한 번 언약을 하여 주단까지 받았는데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이냐" 아마 너의 어머니가 환장이 되었나 보구나. 내가 아 니한 편지를 청탁하고 그따위 짓을 집구석에 있어 하였단 말이냐?"

"편지가 한 번만 온 것이 아니라 연거푸 여러 번을 왔는데, 저도 보니까 아버지 친필과 흡사하여요."

서주사가 무릎을 탁 치며,

"옳지, 이놈의 협잡이로구나. 그래서 혼인은 어디로 다시 정하라고 하였으며, 너희들이 배는 어찌해서 타고 어디로 가는 모양이냐?"

"혼인은 우리 이웃에서 살던‥‥‥."

"응, 황공삼이?"

"예."

"그래서?"

"불복일로 성례를 하라고 아바지 편지가 오자 황가가 올라 와서 성례를 하려고 하여요."

"저런 죽일 놈 보아. 그놈이 밤낮 내 글씨를 모본하기에 제 문필이 짧으니까 공부하는 줄만 알았더니, 흉한 뜻을 품은 줄이야 누가 뜻이나 하였어, 그래서?"

"저는 죽으면 죽었지 그대로 할 수가 없어서 먹도 아니하 고 머리를 싸고 누웠더니, 집안에서 잔치를 설비한다, 황가 가 올라왔다 하는 양을 보온즉, 밝는 날이면 변통없이 욕을 면치 못하겠기로, 어른들 보시는데 쾌히 낙종이나 할 듯이 좋은 기색을 보여, 마음들을 터놓으시도록 한 후에 밤들기 를 기다려 뒤꼍 오동나무에 가 목을 매어 죽으려는 차에."

"네가 자처를 하려고 목을 매더랬었어" 저런 변이 있나! 그 래, 어떻게 살아났느냐?"

연희는 다시 대답이 없고 영록이가 서주사 앞에 절 한번을 공손히 하더니,

"제가 미거한 탓으로 영애가 그 지경을 할 뿐 아니라 지금 이 곤란까지 당케 하였사오니 심히 황송하오이다."

하고, 연희가 식음을 전폐하고 황가에게 시집을 아니가려 한다는 소문이 났기로 애석한 마음을 못 이겨 사람을 은근 히 놓아 동정을 탐지한즉, 연희가 별안간에 좋은 낯으로 내 일 성례하기를 낙종한다는 말을 듣고, 분심이 폭발하여 밤 에 잠을 못 자고 고생고생하다가, 슬며시 내눈으로 그 거동 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사다리를 갖다놓고 담 넘어가 던 말로, 담 안 오동나무 가지에 연희가 목매는 것을 보고 놀라 뛰어내려 구게하던 말로, 같이 그 담을 넘어와 남복을 시켜가지고 압구정으로 도주한 말로, 중로에서 곤경을 겼다 가 자기 고모를 만나 같이 나가서 작수 성례하던 말로, 웬 놈들이 성군작당하여 들어오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또 도 망하던 말이며, 강절벽에서 실족하여 둘이 내리구르던 말이 며, 요행으로 빈배 안에 가 떨어져 그 강을 건너가려고 배 매어놓은 끈을 끌렀다가 노질을 할 줄 몰라 그 모양으로 떠 내려오던 일장을 차례차례 고하니, 서주사가 듣기를 다하고 서 주먹을 뽑내어 뱃전을 땅땅 치며,

"저런 죽일 놈, 그놈이 흉한 심장으로 내 필적을 모본하여 내 딸을 입욕하려고. 어, 열 번 찢어죽여도 내분을 못다 풀 놈, 그놈으로 해서 죄없는 너희들이 공연히 비명에 수국 고 혼이 될 뻔하였구나. 오냐, 아무 걱정 말고 나와 같이 집으 로 들어가자. 그 놈을 당장 경찰서로 끌고 가서 문서 위조 법으로 고발하여 청 바지를 입혀놓을 터이라."

하고 사공 시켜 부지런히 노를 저어 용산 와 하륙하여, 전 차를 타고 남대문 dksRK지 와서서 주사가 무슨 생각을 하 더니,

"이애들, 이에서 내리자.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서주사가 두 아이를 데리고 대평동 어느 집으로 들어가며,

"어멈, 집에 있나?"

"누가 우리 집에 오셨읍니까?"

"응, 지금 올라오는 길일세."

"에그, 댁에서는 나으리께서 그렇게 오래 아니 올라오신다 고 아주 걱정 중으로 계시던데요."

"언제 댁에를 갔던가?"

"한 보름 전에 가 뵈옵고 요사이는 공연히 골몰을 해서 못 가뵈었읍니다."

"아범은 어디 갔나" 근자에도 고기잡이나 잘 하나?"

"잘이 다 무엇입시오" 벌써 못 살 때가 되느라고 간밤에 그물을 쳐놓고 날이 추우니까 어한을 하려고 술집에를 들어 갔다가 술이 취하여 누워 자고 막 밝자 강으로 나와보니까 어떤 몹쓸놈이 배를 도둑하여 가서 그래서 지금 눈이 뒤집 혀 온 강으로 돌아다니며 찾는다고 나아갔답니다."

주인 마누라가 제 말 하느라고 분주무하다가, 영록과 연희 를 보고 깜짝놀라며,

"에그, 작은아씨가 웬일이요" 김의관 댁 도령님도 왔네. 이 게 웬일인가" 나리 마님, 작은아씨와 저도령님을 어디서 데 리고 오십니까?"

"요란스러워, 떠들지 말고 저 애들을 자네 집에 좀 감추어 두게. 곡절은 차차 알고."

주인 마누라가 감히 다시 묻지도 못하고 영록과 연희를 방 으로 들어앉히며 입속의 말로,

"무슨 사단으로 작은아씨와 저 도령님을 우리 집에다 데려 다 두시며, 떠들지 말라고 당바를 하시나?"

서주사가 아이들을 맡기고 홀로 나가며,

"여보게, 영감 들어오거든 잃어버린 배가 지금 용산 앞 강 에 가 있을 터이니 공연히 애쓰고 찾으러 다니지 말고, 곧 용산 강으로 가보라고 이르게."

"나으리께서 어떻게 저의 배 용산 강에 가 있는 것을 알으 셔요?"

"이 다음 말하지."

하고 인력거를 불러 타고 급히 몰아 자기 집으로 오며 혼 자 생각이라.

(이놈이 내가 이렇게 올 줄은 모르고 뻔뻔스럽게 우리 집 에 가 턱 앉아서 요두전목을 하며 연희를 찾아놓라고 야료 를 할 터이지. 내가 쑥 들어가는 것을 보면 저놈이 아주 질 색을 하렷다! 내가 들어가는 길로 이 놈을 달아나지 못하게 꼭 붙잡고, 경찰서로 가야지. 자칫하다가는 놓치기가 쉬울 터이다.) 하며 자기 집에를 당도하니 대문을 꼭 닫았는데 사람의 소 리가 적적한지라 인력거에 선뜻 내려 가만히 서서 동정을 보다가 슬며시 대문을 열고 자취없이 들어가며 우선 사랑부 터 엿보니, 마루 위에 흙발자취가 어지러이 났는데 곁문이 척척 닫히어 아무도 없는 모양이라, 혼잣말로,

"이놈이 어디 가 있길래 우리 집에 없노" 마루에 흙발자취 를 보니까 한바탕 야단은 톡톡히 한 모양이로구나."

다시 발길을 내놓아 안으로 들어가니, 행랑마누라가 부엌 에서 툭 튀어나오며,

"에구, 나리마님 행차하시네."

그 대답은 하지도 아니하고 안방으로 바로 들어가려는데,

"이 댁에 아무도 아니계십니다."

"다 어디 가셨나?"

마누라가 비죽비죽 울며,

"그 동안에 댁에는 큰 변괴가 났답니다."

"응" 변괴라니, 무슨 변괴?"

"작은아씨께서 어디로 가셔서 사면 찾아도 도무지 종적이 없고, 황서방님은 작은 아씨를 당장 찾아 놓으라고 시시로 오셔서 어떻게 야단을 하시는지, 마님과 아씨께서 진지도 못 잡숫고 잠도 못 주무시며 애를 쓰시다가 못하여, 황서방 님이 어디 가신 승시하여 마님은 마님 조카님 댁으로, 아씨 는 아씨 친정댁으로 몸을 피하셨읍니다."

"황가가 어떤 놈인데, 댁 작은아씨 어디 간 것이 무슨 상관 이라고 찾아놓으라고 야료를 하더란 말인가?"

"에그, 저런 말씀 보시게. 황서방을 모르셔요" 나으리께서 작은아씨와 혼인을 지내라고 편지까지 하여 보내셨다는데 요?"

"그 말은 고만두고 대관절 황가가 어디로 갔냐?"

"황서방님이요" 그 서방님이 댁에만 와서 야단을 하실 뿐 아니라, 작은아씨와 먼저 정혼하였던 이 건너 김의관댁에도 가서 어떻게 야단을 치셨는지 모르는데, 그 댁 영감의 누님 댁이 압구정에 계신데, 작은 아씨가 게 가 있기가 쉽다고 김의관영감을 앞세우고 압구정으로 나아가셨답니다. 인제 오래지 아니하여 들오오실걸요. 그래, 작은 아씨를 찾아가지 고 들어오셨으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그 야단을 또 어 떻게 만나리 싶으셔서 몸들을 피하셨답니다."

"딱하신 일일세. 피신해 무엇해" 어서 가서 마님도 오시고 아씨도 오라 하게."

행랑 마누라가 대답을 하고 나아간 뒤에 서주사 홀로 앉아 궁리하는 말이라.

"이놈이 압구정에를 바로 알고 찾아가기는 하였다마는, 연 희가 있어야 아니 만나보랴" 연희를 못 만나고는 또 지다위 를 하러 들어올 터이렷다. 오, 이놈, 들어오기만 하여라. 하 늘 높은 구경을 단단히 시키리라. 곧잘 살던 집안이 이게 무슨 풍파란 말인고! 이 탓 저 탓 할 것없이 우리 어머니께 서 망령이시고, 나의 내자가 지각없는 탓으로, 그 괴악한 놈 에게 속고서 자식의 못할 노릇을 하고 남의 위세까지 하였 지. 그놈이 아무리 내 글씨를 모본하였기로 내외간에 내 글 씨를 그다지 몰라서 진가를 분별치 못하였담, 응! 다름이 아 니지, 소위 관상쟁이년에게 고혹하여 아무쪼록 영록에게 퇴 혼할 계교가 앞서서, 위조 편지를 보고도 눈이 어두웠던 것 이지."

장씨 조인의 조카 장시어의 집은 모교 근처라. 다동에서 얼마 멀지 아니한 탓으로 자기 아들 올라왔다는 말을 듣고 인력거를 타고 거무하에 돌아와 자기 아들의 손목을 잡고,

"에그, 네가 어떻게 올라왔느냐?"

서주사가 자기 어머니 앞에 가 절을 하고 단정히 꿇어 앉 으며,

"그 동안 병환이나 아니 계셔요?"

"오냐, 나는 아무 병이 청승스럽게 없다마는 그동안 집안에 큰 변괴가 생겼구나."

"글쎄올시다. 지금 들어와 행랑마누라에게 대강 이야기를 들었읍니다마는 그런 일이 어디 있어요?"

"그리했느냐" 네 편지를 본즉 연희의 혼인을 퇴하면, 너 주 인 정하고 있는 황씨와 혼인을 지내겠다 하였는데, 내 마음 에도 퇴혼하는 것이 해롭지 아니 여겨 즉시 네 말대로 일변 퇴혼한다, 일변 불복일 성례할 준비를 하였구나."

"그래서오니까?"

연희도 당초부터 그 일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바락바락 반 대를 하다가, 나중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머리를 싸고 누워 있기에 일변 꾸짖고 달래기는 하면서도 은근히 큰 근심을 하였더니, 급기 저녁을 당하여는 이애가 좋은 낯으로 발딱 일어나 소세도 하고, 밤도 먹고, 성적하러 온 수모와도 이야 기를 다 하기에, 혹시 독한 마음이나 먹을까 염려하여 내가 제 방에 가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있다가, 그 거동을 보고 서 적이 마음이 놓여셔 안방으로 와서 잠시 허리를 펴느라 고 누웠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깨어본즉, 이 애가 간 곳이 없구나. 온 집안이 황황망조하여 사면으로 찾는데, 김의관의 아들 영록이도 밤 사이에 어디로 도망을 하였다고 야단하는 것을 들은즉, 짐작컨대 저희들이 같이 도망을 한 모양인데."

"그래서오니까?"

"네가 올려보낸 황공삼이가 그 소리를 듣더니, 압다 젊은 사람이 영악도 하더라. 열 길 스무 길 펄펄 뛰어, 전하심 후 하심으로 혼인을 정할 제는 웬일이고, 성례 임박하여 빼돌 리기는 웬일이냐 마냐, 성례만 아니했다 뿐이지 당신의 딸 은 즉 내 계집이니 나무라도 깍아 세우고 돌로라도 다듬어 세우라고 야단을 하다가, 김의관 집에 가서도 어떻게 야단 법석을 하였던지 김의관이 그 사람에게 끌려 지금 압구정 매씨 집으로 찾아갔단다. 하나님 덕분에 그 애들을 붙들기 나 하였으면 좋겠다마는."

"어머님, 너무 걱정 말으십시오. 제가 그 동안 앓느라고 세 상을 몰랐는데 집에 편지가 무엇이오니까" 그게 모두 황가 놈의 흉계온데 어머님께서 꼭 속으셨읍니다."

하고 영록과 연희를 사지에서 구하여 데리고 오다가 중간 에 감추어 둔 일절을 조용히 고하니 장씨가 다시 놀라며,

"이애, 저런 죽일 놈이 세상에 또 어디 있느냐" 이 놈이 들 어오면 나라도 대들어 칼로 배지를 갈라 분풀이를 하겠다.

그놈에게 꼭 속고 죽을 애를 다 썼지. 어른은 어쨌든지 그 철모르는 어린것들을 비명에 죽일 뻔하지 않았나!"

일변 임씨를 재촉하여 오란다, 밤이 이윽한 뒤에 영록 내 외를 데려다가 행랑것도 모르게 뒷방에 감추어 둔다 하고, 황가 들어오기만 고대하더라. 그때에 김의관이 둘째 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바로 황공삼의 집을 물어서 방장 자 기 아들 영록이가 그 집에 있는 줄로 여기고 바로 쑥 들어 가니, 황가는 겁결에 나는 듯이 제 집에를 달려와 또 무슨 후환이 정녕 있을 듯싶어, 가장 집물을 수습하여 가지고 종 적 모르게 고비원주할 작정이더니, 힐끗 보니까 김의관이 두 눈에 눈물 흔적을 후줄하게 흘리고 들어오는지라. 가슴 이 덜컥 내려앉아, (에구머니, 저 분네가 어찌해서 내려오나" 옳지, 벌써 서주 사를 만나보고 나를 잡으러 내려왔나 보다. 저자를 가만히 두었다는 당장 경찰서에 고발곧 하는 날이면 나는 속절없이 살지 못할 터이니, 에라, 죄를 한 번 지으나 두 번 지으나 일반이다. 미리 잡두리를 하여 나 살 도리를 해야 하겠다.) 하고 식칼을 손에 들고 문 옆에 숨어 섰다가 김의관이 막 들어오는 것을 힘껏 명문을 찔러 넘어뜨렸더라. 김의관은 그줄 저줄 다 모르고 황가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달래머, 연희는 황가가 내놓든지 말든지 자기 아들이나 살 려달라 하여 데리고 올라갈 작정으로, 아무 방비 없이 들어 가다가 황가의 독한 칼을 맞고 넘어졌는데, 황가는 그 칼을 다가잡고 두 서너 번 다시 난자를 하여 성명을 아주 결단시 켜, 부엌 뒤로 끌어다 아니 보일만치 대강 파묻고, 가장 집 물을 팔 여부없이 마침 있던 돈 수십 원만 가지고 도망을 하는데, 제 집에서 부리는 하인은 다만 모자 뿐이라 아들놈 은 서울을 데리고 갔다가 떨어져 있고, 그 어미 노파가 빈 집을 지키고 있다가 천만 뜻밖에 그 광경을 보고 무서움을 못이겨, 한편 구석에서 벌벌 떨고 섰는지라. 황가의 생각에, (저 마구는 비록 무식하나 나의 행흉을 목도하였은즉 그대 로 두었다는 폐가 필경 되겠다.) 하고 노파를 앞으로 부르더니 나직한 말로,

"여보게, 우리 여기 있다는 큰 봉변을 할 것이니 아무 말 말고 나를 따라가세."

노파가 간신히 대답하는 목소리로,

"어디로 가시자고 하십니까" 제 자식 옥이란 놈은 어찌하 여 아니 옵니까?"

"글세, 급하니 잔말 말고 가기만 해! 가면 옥이도 만나고 다 관게치 않을 것이니."

"그러면 갑시다."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 행담 속에 헌 옷가지를 주섬주섬 집어넣는지라 공삼이가 성화같이 재촉을 하며,

"그까짓 것은 가지고 가서 무엇하려나" 게 내버려 두게."

"아무리 헌것이라도 아니 가지고 가면 당장 무엇을 입습니 까?"

"가기만 하면 입을 것도 다 있어."

고 모양으로 재촉을 하여 가려하는데, 그때가 초승이라 달 은 없고 밤은 되어 지척을 분변키 어려운데, 바로 바닷가 으슥한 곳으로 나아가니, 사람의 소리와 등불은 일 마장 아 래나 되는 부두에서 들리고 보일 뿐이요, 언덕 아래 흉흉한 파도가 와글와글 끓는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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韩国诗人兼导演沈熏
沈熏永久的浅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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