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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熏不死鸟第 3 页

作者:沈熏    文章来历:本站原创    更新时刻:2017-7-3

小说阅览系列

"나리마님, 이리로 어디로 가시렵니까?"

"가는 데가 있어. 누가 듣네, 떠들지 말고 이리 가까이 와 서 내 말 좀 듣게."

노파는 본래 저의 주인의 말이라면 지체 않고 거행하는 위 인인데, 더구나 그런 때를 당하여 어찌 주저하리요. 저벅저 벅 공삼의 앞으로 들어가니, 공삼이가 가장 무슨 귓속 말이 나 할 듯이 바싹 다가서더니, 노파의 두 어깨를 잔뜩 쥐고 언덕 아래로 밀뜨리니, 근력없는 노파가 어찌 장정의 힘을 당하리요. 풍덩 소리가 나며 물결이 사면으로 헤어지는 곳 에 무죄한 노파가 용궁 구경을 하게 되었더라. 황가가 혼잣 말로,

"옳다, 인제야 마음을 놓겠다. 내가 너를 죽이고 싶어 죽인 것은 아니니, 죽은 고혼이라도 원망은 깊이 말아라. 내가 이 다음 잘되면 해마다 제사나 잘 지내주마."

하고 그 즉시 부두로 내려와 진남포로 가는 배를 잡아타고 훌쩍 떠나버리니, 그날 그 밤에 그 일 난 것을 그 항구에 알 사람이 누가 있었으리요" 그 이튿날 해가 늦은 뒤에야 그 집에 사람의 소리가 도무지 없는 것을 의심내어, 하나씩 둘씩 가서 대문 틈으로 엿보기도 하고 엿듣기도 하나 마침 내 동정이 없거늘, 그제는 대문을 열어본즉 안으로 걸리지 도 아니하였는지라 옥이 어머니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 다.

"어허, 이게 웬일인가" 이 집에 사람이 없나" 있어도 죽었 나" 어찌해서 대답이 도무지 없을까?"

하고 안으로 들어가 이 방 저 방 문을 열어보아도 사람의 그림자도 없고 다만 중문 뒤에 피 흔적만 낭자하다. 그 길 로 경찰서에 가 고발을 하니, 경관이 급히 출장하여 사면으 로 수색하다가, 필경은 부엌 뒤에 피묻은 남자의 시체 하나 를 발견하였는데, 그 집 주인은 나아간 지나 벌써 여러 날 이 되어 없고, 다만 하인 노파 밖에 없었는데 그 노파를 아 무리 찾아도 종적이 묘연한지라, 물어 볼 곳은 없고 시체의 사면을 조사하여 본즉, 속에 명함 두어 장이 있는데,

「김창희」

성명 삼 자 뿐이라. 일변 시체의 죽은 원인을 검사하고 일 변 노파의 종적을 수색하는데, 그 죽은 원인은 남의 칼에 찔려죽은 것이 분명하고, 노파의 거처는 그 살인의 원범을 알지 못하여 진력 형탐하는 중, 공삼의 하인 옥이가 압구정 에서 저의 상전을 잃어버리고 게 있잘수도 없고, 문안으로 갈 수도 없어 할 일없이 저 역시 부산으로 내려오는데, 총 총한 바람에 저의 상전에게 노자 한푼 못 얻고, 적수공권으 로 촌촌 걸식을 하여 아무 소문도 못 듣고 제 상전의 집에 를 찾아 들어가느라니, 별안간 어떤 사람이 와락 달려들어 턱 붙잡더니,

"너 이게 웬일이냐" 여기를 어찌하자고 들어오느냐?"

옥이가 흘끗 보니 이는 곧 제 외가로 척숙되는 한가이라.

"아저씨십니까" 왜 무슨 일이 있읍니까?"

"무슨 일이 다 무엇이냐" 예서는 남의 눈에 뜨이기가 쉽다.

저리 가자, 내 이야기를 할 것이니."

하고 으슥한 수풀 속으로 들어가 전후 말을 다 이야기 하 니 옥이가 혀를 홰홰 내두르며,

"그러면 그 송장이 누구일까요?"

"그 시체를 경찰관이 검사한즉 별로 다른 증거는 없고, 명 함이 들었는데 김창희라고 쓰였더란다."

"김창희요" 에그, 그러면 서울 다방골 사는 김의관 영감인 가 보오이다. 그래, 저 일이 웬 곡절인가" 그 양반이 압구정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 겨를 에 예를 왔던가요" 그래, 댁 서방님 오신 것은 아저씨가 못 보셨읍니까?"

"서방님이 언제 오셨단 말이냐" 나는 못 뵈었다. 나 뿐 아 니라 동리 사람이 아무도 뵈온 이 없길래 경관이 별별 채문 을 다 하는데, 그런 말이 없지?"

"어머니는 어느 때 어디로 가셨어요?"

"저런 딱한 일이 어디 또 있느냐" 어느 때 가시는 것을 뵈 었으면 물어나 보았고, 어디로 간 줄 알면 찾아다가 보게"

이애, 열없이 예서 어루대지 말고 진작 어디로 가거라. 공연 히 죄없이 봉변을 할라."

옥이는 비록 악한 사람의 하례로 있기는 하나, 천질이 제 상전에게 충성되고 제 부모에게 효행이 특이한 중, 의사가 과히 미혹지 아니한 터이라. 제 친적의 전하는 말을 듣고 얼핏 생각하기를, (응, 그만하면 대강 짐작하겠다. 아마 김의관이 아들을 찾 으려고 여기를 내려왔다 우리 댁 서방님을 만나 생 지다위 를 하니까, 서방님께서 그 일을 탄로될까봐 죽여버리고 우 리 어머니를 데리시고 어디로 가셨나보다. 내가 여기서 지 체하여야 소용없으니 진작 사면 팔방 돌아다니며 계신 데를 찾아서, 고생을 하나 낙을 보나 모시고 지내야겠다.) 하고 그 길로 제 척숙을 하직하고 정처없이 가더라.

이 때에 서주사는 자기 딸과 사위를 데려다가 김의관 집으 로 보내고, 날마다 한두 차례씩 건너가 잘 있는 것을 보니 마음에 든든하기는 하나, 사돈의 소식이 여러 날 없는 것이 심히 궁금하기도 하고, 황가놈을 잡아 버릇을 단단히 가르 칠 차로 그 어머니께 가정을 고하고 부산으로 내려온즉, 황 가를 잡기는 고사하고 자기 사돈 김의관이 그 지경이 되었 는지라, 일변 본집으로 전보를 하여 통지하고, 일변 경찰서 에 고소를 하여 범인은 곧 황공삼이니 하루바삐 포박하여 달라 하였더라.

영록은 서가 규수와 작배 동거하니 평생 소원을 성취하여 한없이 기쁘기는 하나, 자기 부친의 뜻을 거역한 일이 못내 황송하여 지내며, 부친이 여러 날 돌아오지 아니함을 십분 초민히 여기더니, 의외에 자기 장인의 전보를 보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 덜미에 벼락이 내리는 듯, 애통함을 마지 못하 다가 주먹을 뽑내며 땅을 치고 벌떡 일어나 몸부림을 땅땅 하며 우는 자기의 어머니를 만류하며 고하는 말이라.

"어머니, 그만 그치시고 진정하십시오. 울기만 하면 돌아가 신 아버님이 살아오십니까" 아무쪼록 아버님 원수를 갚아드 려야 당연한 도리올시다."

"오냐, 너의 아버지 살해한 그놈을 하루바삐 잡아서 간을 씹어야 내 가슴이 시원하겠다."

"걱정 말으십시오. 제가 나는 비록 어리나 옛사람의 말에 정성이르는 바에 쇠와 돌을 가히 뚫은다 하였사오니, 오늘 당장에 어머님 앞을 하직하고 나아가 몇 해가 되든지 기어 이 원수를 갚아 아버님 천대에 계신 혼령을 위로하고야 말 겠나이다."

"네 말은 기특하다마는 어린 것이 어디 가서 그놈을 찾으 며, 설혹 찾기로 어떻게 원수를 갚는단 말이냐" 아무리 지원 극통하더라도 아직 참고 있어 하회를 기다리자. 설마 하나 님이 지시하시기로 죄지은 놈잡을 날이 있게 하시겠지."

"어머님께서는 그대 심려는 말으옵소서. 제가 아무리 나이 는 어리오나 정성을 다하오면 어찌 원수놈을 잡지 못하오리 까" 나이 어린 것을 빙자하고 집에 평안히 있어 불공심수를 갚지 아니하면, 이는 곧 불초자를 면치 못할 터이오니 목전 의 사정 절박함을 생각지 말으시고 쾌히 허락하심을 바라나 이다."

오씨가 영록의 말하는 거동을 보건대 아무래도 제 뜻을 막 기 어려운지라 한숨을 길게 쉬며,

"네가 정 그렇게 뜻이 들어가거든 마음대로 하기는 하여라 마는,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다가는 원수도 갚지 못하고 모 진 목숨이 죽지 못하고 살아 있는 어미의 가슴에 못만 더 박히게 할라."

"어머님 훈계대로 하오리니 아무 염려 말으옵시고 안녕히 계시면, 아무쪼록 하루바삐 돌아와 뵈오리다."

영록이가 그 어머니 앞에 하직을 하고 죽장망해로 나서려 하는데, 자기 부인 서씨 즉 연희가 역시 남복을 차리고 나 아와, 먼저 오씨 부인께 자기 남편과 같이 나아가 원수갚기 를 청한다.

"어머님께옵서 홀로 계시온데, 슬하를 떠나가겠노라 함은 자식 도리에 황송하오나 시아버님의 참혹한 일 당하심은 모 두 불초한 제 죄로 인연함이오니, 제가 비록 규중 여자오나 어찌 집에 편히 있어 원수놈을 찾아 갚지 아니하오리까" 바 라건대 미거한 말씀을 용서하옵고 장곡에 맺힌 뜻을 성취케 하여주옵소서."

"이애, 네 말이 그르다는 것은 아니다마는, 네가 나간대야 원수갚을 능력은 없을 것이요, 잘못하다가 나의 유한만 더 되게 하기가 십상팔구인즉 십분 다시 생각하여라."

영록이가 자기 어머니 말끝에 다시 이어 이르는 말이라.

"여보 부인, 부인의 말을 들은즉 용혹무비오마는, 그는 그 렇지 아니한 것이, 나는 밖으로 나아가 상사 나신 아버님 원수를 갚고, 부인은 집에 있어 생존하신 어머님 봉양을 하 여야 피차에 당연한 도리일뿐아니라, 나아간 내가 일이 여 의히 못되어 광일이 오래 된대도 마음을 놓아 집안 근심이 없을 터이니, 부인 이 집에 있어 어머님을 봉양하는 것이 오히려 나와 함께 나아가느니보다 나을 줄로 아나이다."

"이 사람이 비록 문견이 없으나 그런 생각을 못하였사오리 까마는, 둘의 힘이 하나보다 나은 것은 정한이치라, 오랫동 안 신고를 하시느니보다 우리 둘의 힘을 합하여 진작 보수 를 하고 돌아와, 어머님 슬하를 길이 모시는 것이 어찌 가 하지 아니하오리까" 변변치 못한 뜻이오나 이미 정하였사오 니 용서하여 주심을 바라나이다."

영록이가 그 뜻을 억제하기 어려움을 짐작하고, 도리어 자 기 어머니께 간곡히 고하여 내외가 동행케 되었더라. 내외 가 오씨부인께 하직을 고하고, 장차 장씨노인"임씨부인께 사 연을 고한 후, 먼저 부산으로 내려가기를 의논할 새 연희가 은근히 말하기를,

"우리 친정에 가서 하직을 고함도 불가하고 부산으로 먼저 가는 것도 역시 불가하오니, 어찌해서 그리하냐 하오면 우 리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나의 떠나는 것을 보면 저사 만류 하실 것이니, 불효의 말씀이나 아직 모르시게 하는 것이 옳 삽고, 부산에 방장 우리 친정아버님이 내려가셨은즉, 그놈 그 근방에 잇기곧 하면 자연 포박이 될 것인데, 내 생각에 는 그 놈이 벌써 멀리 도망하였지 그 근방에 잇을 리가 만 무하온즉, 부산으로도 갈 필요가 없나이다."

"그러면 어디로 먼저 갔으면 좋겠소?"

"규중 여자가 동서 방향을 모르오니 어디라 졸사간 말을 할 수 없사오니, 조선 지도 한 권을 사가지고 자세히 상고 하여 그놈이 가히 감직한 곳을 쫓아가며 찾아보는 것이 제 일 가할까 하나이다."

영록이가 그 말을 옳게 여겨 즉시 지도 한 권을 사가지고 사면 방향을 살펴본 후에,

"이놈이 결단코 육지로는 아니 가고 배를 탔을 터인데, 부 산서 배를 타고 내지로 아니 갔으면 원산이나 삼화로 갔기 가 십상팔구인즉, 우리 원산으로 먼저 가봅시다."

"아니 그렇지 아니하지요. 원산"삼화 두곳으로 의심이 들진 대 구태여 한 곳으로 갈 것이 아니오라, 우리 둘이 각기 나 뉘어 하나는 원산으로 가보고, 하나는 삼화로 가보는 것이 가할까 하나이다."

"천부당한 말도 하오. 나는 남자이니까 혼자 말고 반쪽이 간대도 무슨 일이 있겠소마는, 부인이 어디를 혼자 간다고 하시오" 만 번 가서 그 놈을 만나기로 어떻게 처지하는 도 리가 있소" 공연히 원수도 못 갚고 몸에 욕만 돌아오기가 첩경 쉬우니 그런 말은 두 번도 말으오."

"그렇게 말씀하시기가 쉽사오나, 그놈이 그물에 벗어진 토 끼 모양으로 하방으로 도망하여, 우리가 찾아갈 줄은 천만 의외의 일일뿐더러, 제 눈에 뜨일 것도 없고, 불행히 제 눈 에 띄기로 남복을 한 터에 제가 어찌 얼핏 알아보오리까"

그놈 있는 것만 아는 날이면 몸을 피하여 바로 소관 관청으 로 가서, 범인을 포박하여 달라 고발곧 하면 무슨 흐려가 있사오리까?"

연희도 일시 조급한 마음으로 그렇게 말을 하고, 영록도 그 말이 근리한 듯싶어 다시 연구하여볼 여부없이 그리 하 자 허락하였는데, 이 일 보통으로 추측하면 인정 밖이라 하 기 쉬우나 그 내외 두 사람의 철천지한이 가슴에 꼭 차서, 그놈 어서 잡는 데만 정신이 팔려 혈혈단신이 서로 나뉘어 가기를 일호도 주저하지 아니함이러라.

두 사람이 각각 갈 곳을 정할새 연희는 진남포로 가기로, 영록은 원산으로 가기로 정하였는데, 영록이가 경인선 기차 를 연희와 같이 타고 인천항에 도착하여 연희를 전송하는 것이라.

전밤중 조수가 덜꺽덜꺽 몰아들어와 부두 앞을 탁탁 치고, 진터리에 덩그렇게 놓여 있던 풍범선들은 물 기운을 못이겨 낱낱이 둥둥 떠서 파도치는대로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태외 지 장수들은 물건을 내어 싣느라고 사람의 소리가 와글와글 끓는데, 창창한 두 소년이 해안에 마주서서 눈물을 뿌리며 작별을 하는 광경은, 심양강 비파소리가 바람결에 들리는 듯 한없이 처량하고 연연한 경황은 차마 사람의 눈으로 못 볼러라. 한 소년이 방장 종배를 타고 떠나려 하는데 한 소 년은 잡았던 손목을 차마 못 놓고 나직이 묻는 말이라.

"여보, 우리가 이렇게 헤어지면 하일 하시에 어디서 만난단 말이요" 일정한 후기가 있어야 아니하오?"

배 타려던 소년이 내려놓았던 발길을 다시 올려놓으며,

"글쎄올시다. 그는 처분대로 어느날 어느 지방이던지 정하 사 일자를 말씀하옵소서."

묻던 소년이 배 타려는 소년의 귀에 입을 대고 대강 몇 마 디를 하는데 사공이 퉁명스러운 말로,

"어서 타시오. 시간이 다 되었읍니다. 무슨 이야기를 진작 못하고 타시려는 양반을 붙잡고 이러시오?"

두 사람이 잡았던 손목을 사공의 소리에 힘없이 스르르 놓 고, 한 소년은 배에 올라 나는 듯이 바다 한가운데로 향하 여 가고, 한 소년이 부두에 그대로 우두커니 서서 걷잡을 수 없이 나오는 눈물을 수건이 흠씬 젖도록 적시는데, 그 배가 해중으로 들어가 산덩이같이 팔미도를 턱 막아 서 있 는 화륜선에다 세우고, 선객을 윤선으로 인도하여 들이더니, 별안간에 연기가 풀석풀석 나며 기적소리가 두 귀가 딱 맞 히게 나더니 번개같이 가는 지라 부두에서 바라던 소년이 한숨 한 번을 길게 쉬고 돌아서서, 축현 정거장에 와 기차 시간을 기다려 남문 정거장으로 오더니, 급급히 다시 차표 를 사가지고 경원선 기차를 또 타더라. 경원선 철도가 아직 은 개통이 다 못되어 겨우 철원읍에 이르렀는데, 영록이가 철원읍에서 차를 내려 즉시 인력거를 두 패 질러타고 원산 항에를 당도하였더라. 혹 한 눈이 먼 체, 혹 한 다리 저는 체, 혹 얼굴에 때칠도 하고, 혹 헌 의복도 바꾸어 입으며, 이따금 의관도 정체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황하도록 행색을 차려가지고, 원산항 가가호호이 모두 수색하여 보아 도 황가의 종적이 묘연한지라 은근히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 다가, 가만히 생각한즉 인천 부두에서 자기 아낙과 만나자 는 기한이 그럭저럭 박두하였는지라 혼잣말로,

"이놈이 이곳에는 아니 왔는 것을 공연히 돌아다니며 찾았 구나. 자기가 저사 고집하기로 뜻을 막을 수가 없어 섬섬 여자를 홀로 가게 내버려 두었는데 천행으로 그놈의 종적이 나 채탐하였으면 공연히 고생만 참혹히 하였을 터인데, 고 생은 으레 면치 못하려니와 생명에나 큰 관계나 없었으면 그 아니 좋을까! 내가 오늘 내로 곧 떠나서 평양으로 가야 약조한 날을 어기지 아니할 터이다."

하고 즉시 항구에 나아가 기선을 타고 삼화항으로 가서 분 주히 평양으로 올라왔더라. 북풍 겨울 하늘에 첫 눈이 풀풀 날리어 장림 쇠한 나무가지에 경각내 이화가 만발한 듯한 데, 소년 남자 하나이 새벽 빛을 띠고 홀로 오르락내리락하 며 중얼중얼 혼잣말이라.

"거진 올 때가 되었는데, 날은 벌써 밝았는데 웬 곡절 인구 이상도 하다. 내가 날을 잘못 쳤나" 그저께가 금요일 어저께 가 토요일, 오늘 정녕 이달 끝 일요일인데, 남의 길과 달라 멀리서 오느라고 미처 대오지를 못하나" 시간에는 못 대오 더라도 설마 얼마 아니있으면 당도하겠지."

하며 앉았다 섰다 이리도 바라보고 저리도 바라보며 애꿎 은 궐련만 펄쩍 쉴 새 없이 피워문다. 일 년 열두 달 중에 양력 십이월이 해가 짧아서 날이 밝자 한나절이 되고, 한나 절이 되자 어두워지는데, 영록이는 첫새벽부터 장림 긴 수 풀 속으로 왔다갔다 한 시각이 십 년이나 지지않게 보내며 사람을 고대하는데, 부지중 해가 서산에 넘어가 점점 어두 워지니 일부중 저녁 연기가 바람에 불리어 나뭇 가지마다 깃들어 지척을 분별키 어려워 온다. 대인난, 대인난, 백난지 중에 대인난이라. 영록이가 그 해가 다 지도록 자기 부인의 오기를 기다리느라고 입술이 마르고 가슴이 타서, 별별별별 망념을 다하여 애를 쓰다가 하릴없이 주인집으로 돌아오며 여러 가지로 근심을 한다.

(당초에 내가 잘못이지. 어찌하자고 여자의 몸을 혼자 가게 내버려 두었던고! 범절이 용렬하고 모호한 자격같으면 오늘 일자를 등한이 잊기나 쉬우려니와, 응당 오늘 일자를 가슴 에 새겨두어 잠시라도 잊을 리가 만무한데 어찌하여 못 오 는고"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로다. 중로에서 도척을 마 나 해를 당하였나" 아니 몸에 재물이 없고 의복도 잘 입지 를 아니했으니 도적이 보기로 무엇을 빼앗자고 덤볐을 리도 없고, 황가놈을 만나 피신을 못하고 욕을 당하였나" 아니, 그도 그렇지 않은 것이, 만손 그놈에게 욕을 당하였더라도 바로 자기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는 무슨 방법을 하든지 내 가 번연이 오늘 이리로 올 줄 아는데 기별 한 마디 아니하 여 주었을 리가 만무하지. 이게 웬 까닭인가" 아무리 생각하 여도 황가놈을 만나 오도가도 꼼짝 못하고 잡혀 있는 것이 확실한가 보다.) 그 밤을 잠 한잠 못자고 심려를 하다가, (에라, 세상 일을 몰라. 날짜를 잘못 꼽았어도 하루 더 기 다려 보는 것이 옳다.) 하고 첫새벽에 다시 장림으로 나아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 며 해를 보다가, (어, 진작 삼화로 가 찾아볼걸. 공연히 하루 해만 더지었구.

그러나 저 원수놈에게 잡히기만 하였으면 그 놈이 어림없이 그곳에 붙들고 있을 리가 만무하고, 또 그 성미에 황가놈 말을 얼핏 순종하여 생명을 부지했을 리가 만무한데, 오, 이 놈, 내가 열 치가 한 치가 되기로 죽기로써 결심한 이상에 세상없기로 너 한 놈 잘 살라고 내버려둘 줄 아느냐!) 이 모양으로 바안 활개를 치며 기차를 타고 삼화항으로 향 하였더라. 차가 강서 땅에를 당하여 기양 정거장에 잠시 정 거를 하는데, 연일 밤잠을 못 자고 석탄 연기에 머리가 아 파서 잠시 바람을 쏘이려고 차에서 내려 시원한 바람을 향 하고 섰는데, 어떤 자가 옆에 와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소매 를 턱 붙잡으며,

"댁이 여기 어째 왔소?"

총기가 다른 사람보다 배승한 영록이가 어찌 그자를 몰라 보리요. 깜짝놀라 나오는 소리를 억지로 참고,

"누구시오?"

"누구는 차차 알고 이리로 와서 나 잠깐 보시오."

"할 말씀이 있거든 여기서 하오. 차가 오래지 아니하여 떠 나겠으니까 못 가겠소."

"그 양반 대단히 뻑뻑하다. 차는 이 번 차밖에 다시 없소"

이 다음 차를 타구려. 친구가 청하는데 아니 가는 것이 다 무엇이야?"

"그 양반 별소리를 다 하며, 총총히 가는 남을 붙잡고 무단 히 힐난하네."

하며 속 마음으로, (저놈이 분명한 황가의 하인놈인데, 나를 알아보고 이 모양 으로 힐난을 할 제는 정녕 제 상전 황가놈이 이 근처에 있 는 모양이다. 내가 집에서 결심하고 떠나기는 황가놈 만나 원수 갚자는 것인데, 황가가 있음 직한 증거를 보고 갈 필 요가 없고, 나의 내자도 그 놈에게 붙잡혀 있지나 아니한지 저놈에게 못이기는 체하고 어디 좀 가 볼까보다. 그러나 저 놈은 둘이요, 나는 단 하나요 겸하여 약질인데, 갔다가 귀신 도 모르는 죽음을 당하면 그 아니 딱한가! 에라, 범의 굴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범을 어찌 잡겠느냐" 좌우간 가 보는게 옳다."

하고,

"여보, 댁이 정 가자니 가기는 합시다마는, 가는데는 대관 절 어디요?"

"가보면 알지요."

영록이가 그자의 잡은 소매를 훌뿌리며,

"이 양밤 소매 놓고 갑시다. 죄인 잡아가듯 이게 무슨 모양 이요?"

"예, 소매는 놓을 것이니 어서 가기나 합시다."

그자가 영록을 앞세우고 얼마 아니 가더니, 큰 객주집으로 들어가 으슥한 사처방 하나를 치우고 들어앉더니 얼굴을 뚫 어지게 살펴보며 새삼스럽게 인사를 청한다,

"그러나 노형 성씨가 누구시오?"

"여보,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고 보자고 했읍니 까" 내 성은 오가요."

"공연히 이러지 말고 바로 말하시오. 번연히 알고 묻는데 오가라는 것이 다 무엇이요?"

"어떻게 하는 말이요" 오가이기게 오가라고 하지, 오가 아 닌 것을 오가라고 했단 말이요" 그 양반 넉넉히 남의 친기 도 우기겠소."

"댁이 번연히 김서방인 줄 아는데 오가라고 한단말이요"

서울 다동이 댁이지요?"

영록이가 짐짓 껄걸 웃으며,

"예, 그러면 댁에서 횡 보았소. 내 집은 시흥읍인데 다동이 어디 가 붙었는지 알지 못하오."

"댁 어르신네가 김창희 김의관 아니오?"

영록이가 벌덕 일어서 가려고 하며,

"세상에 별일도 다 보았구. 사람을 자세 알지도 못하고 성 화같이 끌고 오더니 별별 소리를 하고 앉았네. 에이, 정신 없는 양반, 나는 가겠소."

그자는 별사람이 아니라 황공삼의 하인 옥이니, 제 상전과 제 어미의 종적을 찾으려고 사면 팔방으로 불폐풍우하고 돌 아다니다가, 마침 기양 정거장에 와서 제 상전이 눈에 혹 띌까 하여 차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을 면면이 상고하다가, 영록이 차에서 내리는 양을 보고 서주사의 딸을 찾아 저의 상전의 소원 성취를 하여주자는 작정으로 제 식주인으로 데 리고 온 일인데, 아무리 자세 보아도 얼굴은 김의관의 아들 과 흡사한데 성명"거주가 같지 아니한지라 제가 혹 잘못 보 았나 의심은 나되, 종시도 알 수가 없어 얼른 놓아보내지 아니하는데, 영록이는 짐짓 못 이기는 체하고 잡혀 있으며 옥이와 본이 나도록 수작을 한다.

"내 성명은 댁에서 이미 아셨거니와 댁은 누구시오?"

"댁 성명을 내가 알다니, 댁이 김의관 자제인 줄을 내가 이 미 알았단 말이요?"

"김의관은 웬 김의관이란 말이요"

"김의관은 웬 김의관이란 말이요" 내가 이미 말하였은즉, 시흥읍 오가인 줄을 알으셨단 말이야요."

옥이가 껄걸 웃으며,

"예, 그렇단 말이야요. 나는 부산 사는 김옥이란 사람이요."

"객고 평안하시오?"

"예, 평안하시오" 댁이 시흥이라며 예는 무슨 일로 오셨던 가요?"

"예, 우리 외가가 평양 외성인데, 외가에 다니러 왔다 진남 포 구경을 하려고 가는 길이오."

"그러면 유람차로 나섰구려. 유람차로 나선 양반이 무엇이 그리 총급하다고 하여 계시오?"

"그야 동역객 서역객 이지마는, 목적지는 진남포인즉 차를 놓치지 아니하고 가야 아니하오" 노형은 어찌하여 예 와 유 련을 하오" 무슨 장사를 하시오?"

"예, 장사도 별로 하는 것이 없고 나 역시 유람을 하러 나 섰소."

"다동 김의관은 어떤 사람인데 나를 보고 그 아이들이냐고 반가이 물어 계시오?"

"김의관이라고 있지요. 댁 모습이 그 아들과 흡사해서 실례 를 했소이다."

"객지에 다니기가 너무 외롭더니 피차에 잘 만났소. 노형도 유람차요 나 역시 유람차인즉, 서로 의지하여 같이 다니면 어떠하겠소?"

옥이가 영록의 딱 잡아떼는 소리를 듣고도 한편으로 의심 은 쾌히 없지 못하더니, 피차 잘 만났으니 작반하여 유람하 자는 말을 듣고 속마음에, (저 사람이 과연 김의관 아들이 아니로구나. 만일 김의관의 아들이 변성명한 것 같으면 내 얼굴을 짐작할 터이니, 어름 어름 빠져나가려고 할 터인데, 작반을 하여 같이 다니자는 것을 본즉, 확실히 다른 사람을 내가 횡보았나 보다. 관기모 자면 인언수재라고, 저 사람 외양 범절이 저만치 얌전할 제 는 마음도 과히 흉치 아니할 터이니, 자기의 소원대로 작반 을 하여 다니며 위인을 보아 통정을 하고 내 뒤를 좀 보아 달라 하겠다.) 각정을 하고 껄걸 웃으며,

"좋은 말씀이요. 피차 객지에서 형제처럼 의지하고 지냈으 면 해롭지 아니하지요."

사람의 능력으로 변통치 못하고 귀신의 재주로도 추측치 못할 것은 선악 보응이라. 매양 천만 뜻밖에 일이 생겨 만 구일담으로 죽으려던 사람이 살아도 나고, 부귀"복록을 천만 년 누릴 듯하던 사람이 없기도 하여, 천태만상이 듣고 보기 에 두렵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재미도 있고 섭섭도 한데, 그 여러 가지 경우를 차례로 손가락을 꼽아 헤어보면, 모두 선한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 일 뿐이어늘, 저 완명 무도한 황공삼은 남의 집 신부를 무례히 욕심내어 아 무 죄없는 김의관을 참혹히 죽이고, 제 죄 엄적하기 위하여 여러 해 신임하던 옥이 어미를 바다에다 떼밀어 없이한 이 후로, 그 밤에 배를 타고 삼화항으로 와서 성명을 변하여 박참위 행세를 하며 여간 돈만 가지고 온 것으로 물건도 무 역하려는 체, 식리도 하려는 체, 가장 큰 부상대고 인모양을 하고 어떠한 객주에 들어 있는데, 그래도 혹아는 자의 눈에 발각이 될까 하여, 가장으로 만든 수염을 주문하여 위아래 턱에다 붙여놓으니, 여간 아는 친구는 고사하고 제 집안 식 구라도 능히 알아보지못할러라.

이때 연희가 자기 남편을 인천 부두에서 작별하고 앞을 가 리는 눈물을 억지로 진정하며 육선에 올라 부지중 진남포에 를 당도하여, 여러 선객과 함께 하륙을 하니, 남자라도 초행 이면 정신이 얼울하려든, 더구나 규중 여자로 대문밖 기척 을 모르다가"번화 복잡한 생면강산에를 당하니, 발길이 서먹 서먹하여 어디로 향할지 모르다가 가만히 생각한즉, (당초에 아니 나섰으면이거니와, 기위 나선 이상에 주저서 어 굴다는 남의 눈에 수상히 보일 터인즉, 아무쪼록 활발한 모양을 보여야 하겠다. 그러나 이놈이 어디 가 있노" 이놈 있는 데를 알아 기약한 날 평양으로 가서 내외가 같이 와 철천지수를 갚을 터인데.) 하고 조금도 수줍은 태도가 없이 다른 남자나 일반으로 객 주집을 찾아 별로 사처를 정하여 잠을 자고, 그 이튿날부터 항구 안 집집마다 슬몃슬몃 구경 다니는 것처럼 모조리 수 색하여도 황가의 영향이 없는지라 혼자 마음에, (이 항구에 있는 노소 행객을 하나 빼지 않고 살펴보아도 황가의 영향을 못 보겠으니, 필경 그놈이 이곳에 없는 것인 즉 내일은 다른 곳으로 가보는 수밖에 없다.) 하고 봇짐의 지도를 내어 방향을 골몰히 살피어 보는데, 어떠한 구레나룻이 설핏하게 난 소년 하나이 들어오더니, 등잔 뒤에 가 앉으며,

"저 양반, 우리 인사합시다."

"좋은 말씀이요."

"뉘댁이시며 어디 살으시오?"

"내 성은 임가인데 살기는 전라도 나주 사오."

"나주 사시는 양반이요" 말소리는 서울 양반 같은데요."

연희가 그자가 성을 묻는데 얼른 생각나는대로 자기외가 성을 대고, 고향을 외가본 나주로 대었더니, 그자가 어음이 같지 아니하다는 말에 군색히 꾸며 말하기를,

"어려서 고향을 떠나 전라도 방언은 다 잊어버렸어요. 노형 은 누구신데 어째 찾아 계시오?"

"나는 서울 사는 박 참위라는 사람인데, 군대 파산 이후에 집에서 놀기만 하다가 장사나 하여볼까 하고 이곳에 와 있 는데, 연일 노형 지나다니시는 것을 보니까 전에 어디서 여 러 번 뵌 듯 낯이 익어서 와서 뵈옵고 인사를 청하였소. 노 형은 무슨 일로 이곳에를 오셔서 여러 날 유련하시오?"

"예, 나는 별로 볼일은 없소이다마는 평안도 물색이 하도 좋다기에 구경차로 내려온 길이요."

"평안도 물색이 좋다지마는, 지금 일기가 엄동이라 구경다 니시기가 어려우시겠소. 동행은 몇 분이나 되나요?"

"동행은 여럿인데 아직 여기는 아니 왔소이다. 날이 추우면 이 모양으로 들어도 있고, 따뜻하면 나서서 돌아다니니까 엄동이 관계 있읍니까?"

"그러면 초면에 어찌 들으실는지는 모르겠소마는 나 역시 객지에 아무도 작반한 이가 없어 너무 적적한데, 노형 동행 오기 전에는 우리 둘이 같이 지내면 어떻겠소?"

연희가 그 말을 들으니 마음에 싫어서 칭탁할 말을 생각하 다가,

"말씀은 감사하나 내가 그렇지 못할 사정이 있소이다."

"무슨 사정이 계신가요?"

"내가 양친시하인데 나 여기 있는 기별을 들으시고 우리 어머니께서 금명간 내려오실 터인즉, 내가 주인을 떠날 수 도 없고, 노형이 내 주인에 같이 계실 수도 없으니 대단히 미안하오."

연희는 그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수문수답을 할 따름이요, 그자는 연희를 칠분 짐작하고 짐짓 찾아 와 지긋지긋 문답 을 하는 것이라.

"허허, 그야 내가 바로 노형 처소로 같이와 있겠다면 모르 거니와, 노형더러어찌 내 주인으로와 계시라고 하겠소" 또는 아직 동거처를 하다가 노형 자당께서 행차하시면 나는 내 주인으로 도로 가도 무방하지요."

연희가 무엇이라 대답할 말이 없어 묵묵히 앉았다가 다시 핑계하는 말이,

"그도 그러하려니와 노형 하실 말씀 한 마디를 여쭐 것이 니 용서하여 집에서 나객지에서나 평생에 꼭 혼자 거처를 하여 버릇을 하여서 친구 말고 부모와도 한방에 누워 자지 를 못하는 버릇이 오니 아무리 박절하오나 모시고 같이 거 처할 수가 없나이다."

구레나룻 난 자가 정색을 하며,

"여보, 어떻게 하는 말이요" 동시 객지에서 그만한 청을 하 였더니 사람 대접을 이렇게 하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요"

나를 노로보로 알으오" 없소. 내가 별로 자본이 많지 못해도 그래도 몇 백원 가지고 영접하는 놈이 댁 행장 도둑하여 갈 내가 아니오."

"그렇게 하실 말씀이 아니올시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여보, 내 고집도 댁만은 착실하오. 댁은 좋거니와 언짢거 니 예 와 같이 있을 테니 귀찮아도 좀 견디시오."

연희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그자가 노했던 얼굴을 훨쩍 풀어 껄껄 웃으며,

"허허, 내가 생찌그렁이군이지요" 그렇지마는 내가 의복이 없다든지 반전이 없어 노형에게 떼를 쓰는 것이아니라, 노 령을 뵈와 보아도 일면여구하여 친절히 사귀자고 이리하는 것인즉, 조금도 어찌알지 말으시오."

"말씀 아니하신대도 모르는 일은 아니오나, 성미가 괴악하 여 아무리 노여하신대도 붕행치 못하겠소이다."

그리할수록 그자가 너털웃음을 하고 얼레발을 치며 수염을 연해 쓰다듬다가 수염이 송두리째 뚝 떨어지니, 그자가 황 망히 돌아앉으며 어름어름 도로 붙이는 양을 연희가 누결에 보고, 그자의 얼굴을 자세 여겨본즉 황가가 분명한지라 경 혼 낙담하여 어찌할 줄 모르다가 다시 생각한즉, 만일 경선 히 굴다는 저놈에게 욕을 당장 못 면할 터이요, 원수도 갚 을 기망이 없는지라 수염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체하 여 천연한 말로,

"노형이 정 이렇게 고집을 하시면 나는 다른 곳으로 가 있 을 터이니 이 방으로 와 계시려거든 계시오."

"그러면 내가 이 방을 탐낸 것쯤 되게요" 댁과 동거처를 한 번 하여보기가 원이 되어 그러는 것인데, 댁은 다른 데 로 가고 나만 예 와 있으라고, 응?"

하더니 연희 턱밑으로 바싹 들어앉으며 또 한 번을 껄껄 웃고 연희의 손목을 잡으려 하며,

"왜 이래, 공연히 성가스럽게. 귀신을 속이지 나를 속이려 고 남복을 하고 변성명을 하면 내가모를 줄 알고 이리하오"

우리가 역시 천생연분이어늘, 무단히 편심으로 고집을 한 대도 소용도 없소마는, 지금이라도 진시 회심하여 바른대로 사정 곧 말하면 내가 얼마쯤 좋을대로 하여주리다."

연희가 가만히 생각한즉, (그놈이 벌써 자기의 본색을 알고 와서 떼를 쓰는 모양이 라 급격히 반대를 하다는 저놈의 손에 속절없이 죽어 불공 심수를 갚지 못할 뿐 아니라, 가장으로 하여금 눈이 빠지도 록 헛 기다리며 고생을 무진 할 터이니, 에라, 차라리 임시 처변으로 비위를 슬슬 맞추어 마음을 놓게 하고 기회를 보 아 처치하리라.) 하고 한숨을 길게 쉬고 나오는 눈물을 손에 들었던 수건으 로 이리저리 씻으며 아무말도 없이 앉았으니, 그자가 앞으 로 다가앉아 연희의 두 뺨을 어루만지며,

"겁내지 말으시오. 이왕 일은 내가 손톱만치라도 개의 할 내가 아니오. 아무 근심 말고 우리 이야기나 합시다. 그래, 김의관의 아들은 어디로 가고 예 와 이렇게 객고를 하오"

하늘이 정하신 연분은 인력으로 어찌 못하는 법이외다."

연희가 짐짓 모르는 체하고 모기 소리만치,

"당신이 누구신데 나를 알으시고 이렇게 말씀을 하셔요?"

"나를 응당 모르리다. 한동리에서 그대를 길러내다시피 한 나를 몰라봐" 자, 자세 보오."

하고서, 위아래 턱의 수염을 뚝뚝 떼고 얼굴을 바싹 들이 대니 연희가 뒤로 주춤 물러앉으며 언뜻 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또 말이 없으니,

"인제 나를 똑똑히 알겠소" 내가 그대에게 내소박맞던 황 공삼이요."

"‥‥‥."

"그때 형편으로 말하면 조금 과격하다고 하면 하겠지마는, 내가 그 경위를 당하였어도 그리 했기가 십상팔구인즉 다시 개론할 것 없고, 우리가 오늘부터 피차 화합하여 백년을 해 로했으면 고만 아니오?"

"‥‥‥."

"도금사세 하여서는 그대가 아무리 내 말을 아니 들으려 하여도 아니될 것인즉, 잠시라도 남의 속 태우지 말고 진작 말을 해요."

"‥‥말을 무엇이라고 해요?"

"김의관의 아들 영록이는 지금 어디 가 있소?"

"나도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다니 말이 되나" 그때 같이 도망을 하고서 알지 를 못한다고" 그래도 종시 뉘를 속이려고! 이러지 말고 어서 바른대로 하라니까."

"사이도차에 할 일 없소이다. 바른대로 말씀을 하오리다."

"응, 진작 그럴 일이지, 김영록이가 어디 있으며, 그대는 어찌하여 혼자 이곳에 와 있소?"

"기차 들으시면 알으시지요. 당초에 김의관의 아들과 같이 도망하기는, 한 번 김씨가 와 정혼한 이상에 변경을 아니할 결심이 있음이러니, 피차에 아무 경력없는 어린 사람들이 수중에 노자도 넉넉지 못하고 간 곳마다 생면 강산이라, 그 간 죽을 풍상을 한없이 겪다가 생목숨이 얼핏 죽기는 어렵 고,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 모양으로 도로 방황하다가는 장 차 무슨 지경에 이를지 몰라 부득이 피차 사정을 말하고 각 각 헤어졌어요."

"압다 그 자식, 그만한 주변도 없는 것이 남의 집 귀한 신 부를 함부로 데리고 도망을 하였던가" 고놈이 그래 어디 가 있소" 발목을 잡아매어 부딪혀 죽이게."

"그 지경이 되니까 그는 서울 자기 집으로 올라가고, 나는 차마 부끄러워서 서울로 가는 수는 없고, 우리 아버지께서 부산 계신 터이니까 부산으로 가려 한는데 몸에 병이 생겨 서 어찌할는지 걱정이 태산 같아요."

"무슨 병이 있단 말이요?"

"집에서 떠난 이후로 일기는 비상이 추운데, 의복을 박착하 고 잠시도 더운데 거처를 못하였더니 그런지, 우연히 아랫 배가 뻗히어 아프기 시작을 하더니 점점 더하여 지금은 굽 도 젖도 할 수가 없고 진정 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냉처를 많이 해서 하초에 냉이 쳐졌나 보구려. 진 작 치료를 하여야지, 부산으로는 무엇하러 간단 말이요" 예 서 병이나 치료하고나와 같이 지내다가 우리 같이 서울로 갑시다그려."

"‥‥‥."

"그 고초를 겪고도 아직도 김가놈을 못 잊어서 대답을 아 니하나 보오마는, 설령 김가가 그 모양으로 제꼭지에 물러 나지를 아니했더라도 내가 있는 이상이면 저는 속절없이 돌 아설 뿐인즉, 만 번 생각하여 소용없 죽은 공연히 그러지 말고 나 시키는대로만 하오."

"‥‥‥."

연희가 간간이 아랫배를 움켜쥐고 은근히 결음정을 내며 못견디어 하는 모양을 하니, 황가가 애가 씌워서,

"여보, 의원을 좀 청해 올까, 방에 불을 더웁게 때라고 할 까" 글쎄, 진정을 하오."

"이만해도 더운데 불은 더 때어 무엇하겠소" 의원이나 좀 보았으면 좋겠으나 이런 시골 구석에 똑똑한 의원이 있을 리가 있나요?"

연희가 의원 보기를 요구하기는 요행 틈을 얻으면 몸을 빼 쳐 도주하자는 계획인데, 황가가 주인을 불러 고명한 의원 어디 있는 것을 물으니, 순직한 주인이 이실 직고하기를,

"여기 의술 똑똑한 의원이 여럿이올시다. 양약을 스시려면 내지에 들어가 졸업한 의학사 회춘당약국이 있고요, 한약을 쓰시려면 저 아랫 동리 권주부약국이 있읍니다."

"그러면 의원을 청해다 보려면 보겠지요?"

"청해다 보기가 좀 거북한 걸요. 권주부는 좀체 정분에는 병을 보러 다니지 아니하고, 회춘당 주인은 오전에는 자기 집에서 병을 보고 오후에야 다섯시간까지 다니며 병을 보는 데, 청하는 사람이 답지하여 며칠 전에 미리 맞추기 전에는 청해 보기가 어려운 걸요. 압다 의술이나 그만치 배워가지 고 약국을 냈으면 큰 실수가 바로 나겠읍디다."

황가가 연희를 돌아보며,

"그러면 양약국에는 급자기 아니되겠고 권주부약국으로 좀 가봅시다."

"에그, 지금같이 아파서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어요. 아구 구, 애구 배야."

주막 주인이 창밖에서 듣다가 황가를 바라보며,

"그러면 영감께서나 권주부를 가보시고 같이 가자 간절히 말씀을 하여보십시오. 그가 점잖은 양반이니까 영감 말씀이 면 아무리 초면이라도 아마 괄시를 아니함직하오이다."

황가가 의원을 가보고 싶은 마음은 미상불 없지 아니하나, 연희를 떨어져 자기가 염려되어 얼른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연희는 눈치를 보고 더욱 앓는 소리를 하고 몸을 비비 틀으 니, 황가가 저 보고 더욱 앓는 소리를 하고 몸을 비비 틀으 니, 황가가 저 보기에 어떻게 딱하고 가이없던지 주인더러,

"여보, 권주부약국이 여기서 얼마나 되오?"

"한 이 마장 가량 밖에 아니됩니다."

"에고, 그만두시오. 초면 모르시는데 가시기로 그런 의원이 올는지도 알 수 없는데, 공연히 수고스러우신데 가깝지도 아니한 데를 가실 것도 없고, 나 같은 팔자 기박한 것 앓다 가 나면 고만이요, 죽은들 관계 있읍니까?"

황가가 의원을 찾아가볼 듯이 말은 하면서도 주저주저하다 가, 연희의 말을 듣더니 와락 가고 싶은 마음이 나서 뒤 염 려를 다시 하여볼 여부 없이 벌떡 일어나서,

"말이 되나, 사람이 죽겠다는데 의원을 지척에다 두고 못 청해다 본단 말이요" 내가 갔다 오지. 여보, 주인, 그집이 어디쯤이요" 내가 지금 한달음에 다녀올 것이니 다사한데 어렵지마는, 저 병자가 대변을 보러 가나 소변을 보러 가나 곁을 떠나지 말고 잘 간호를 하여주오."

"그것은 어렵지 아니하오이다마는, 영감께서 저 양반과 본 래 친하시던가요, 이같이 위하시니?"

"응, 친불친 여부가 있소" 나와 한집안으로 지내는 터인데, 나 여기 있다는 기별을 듣고 찾아온 모양인데 저렇게 몹시 앓는다오. 부디 간호를 잘 하여주오."

부탁을 재삼 하고 권주부약국을 찾아가더라. 그때 연희병 으로 말하면 어서 몸을 빼쳐나야 황가놈에게 욕을 당하지 아니할 터인데, 섣불리 몸을 빼치려 하다는 욕을 더 재촉하 는 터인데, 섣불리 몸을 빼치려 하다는 욕을 더 재촉하는 것이요, 그뿐 아니라 고심하여 찼던 원수를 천행으로 만났 는데, 자기 몸이 도리어 피해가는 것은 일이 아니거니 싶어 한 가지 의사 내기를, (내가 무두 무미히 나가려다는 주인이 황가의 부탁을 들은 터인즉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하고, 황가의 말이 빨간 거짓 말이라고 이실직고를 한 대도 아까 아무말 못한 이상에 곧 이들을 리가 만무한즉, 차라리 주인에게 갑갑한데 산보나 하러 나가자고 하여 슬슬 경찰서 앞까지 가서 얼른 뛰어들 어가 황가를 잡아달라고 고발하는 수 밖에 다시 없다.) 하여 주인을 보고,

"여보, 주인 양반, 배 아픈 것은 조금 진정되나 속이 답답 하여 못살겠구려. 불안하나마 나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나 좀 쏘이러 나갑시다."

"압다, 갑갑하셔도 좀 참으시게요. 영감께서 오래지 아니하 여 오실 터인데."

"오시기로 관계 있소" 나아갔다라도 영감 오시는 것을 보 면 곧 도로 들어오지요."

주인은 아무 뜻도 모르고 그 말이 용혹무괴일 듯하여,

"아무려나 생각대로 하여 봅시다."

하고 동행을 하여 이 거리 저 거리 돌아다니다가,

"여기도 경찰서가 있나요?"

"있고 말고요. 저기 보이는 집이 경찰서라오."

"어디 거기 좀 가서 구경할까요?"

"구경할 것이 무엇 있나요" 대문에는 하인 왕래를 못하게 한즉 들어가볼 수도 없고, 들어간다해도 무엇이 볼 것 있나 요" 바로 죄인 중 아는 사람이나 있으면 면회차로나 들어갈 까요."

연희는 그래도 구경을 가자거니 주인은 가볼 것이 없다거 니 한참 수작을 하는데, 누가 앞으로 와락 달려와 우뚝 서 며,

"여기 어째서 와 계십니까?"

연희가 깜짝놀라 자세 본즉, 이는 곧 황가의 하인놈옥이라, 졸지에 변하는 얼굴빛을 억지로 진정하여 천연한 음성으로,

"자네가 황서방님 하인이 아닌가" 예를 어떻게 찾아왔나?"

그자의 입에서 아무말도 나오기 전에,

"서방님을 여기서 뵈었는데, 내가 복통증이 나서 지금 의원 을 보러 가셨는걸."

옥이가그 말을 들으니 제 상전의 소원 성취가 다 된줄로 추측하고,

"예, 그러하셔요! 저도 서방님을 뵈오려고 지금 사면팔방 찾아 다니는 길이올시다."

"서방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오실걸. 그러나 자네가 나를 어떻게 얼핏 알아보았나?"

"몰라뵈올 리가 있읍니까" 한 번 언뜻 본 김의관의 아들도 알아보았는데요."

연희가 그 말에 궁금증이 나서 어디서 보았느냐고 막 물으 려는데, 황가가 숨이 턱에 닿게 쫓아오며,

"몸이 성치도 못하여 예는 무엇하러 나왔소" 어서들 갑시 다. 의원이 왔소."

처음에는 연희가 혹 어디로 도망을 했는가 황황히 쫓아나 와 그곳에 있는 것을 보더니, 소스라쳐 놀라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못본 체 홱 돌아서며 연희더러,

"어서 들어갑시다."

연희는 자기 목적을 도달치 못함을 분히 여겨 얼른 돌아서 지를 아니하고 주저주저하는데, 옥이가 황가의 앞으로 썩 들어서며 절 한 번을 꾸벅 하더니,

"소인 문안 드립니다."

황가가 마지못하여,

"너 여기를 어떻게 내려왔느냐?"

"소인은 서방님 행차하신 후에, 즉시 댁에를 내려갔다가 예 까지 왔읍니다."

황가가 집에 다녀왔다는 말에 더욱 뒤가 나서 속마음으로, (저놈이 집에를 갔더라니 이것 큰일났구나. 그렇지마는 김 의관 죽은 거를 알았겠지마는 제 어미 죽은 것을 필경 몰랐 겠지. 어디 저놈의 눈치를 좀 보리라.) 하고, 억지로 반가운 체하며,

"허허, 고생을 막심히 하였구나. 너의 어멈 소식은 몰랐지, 아마?"

옥이가 눈이 둥그래지며,

"소인의 어미가 어디 가 있읍니까" 소인은 서방님께서 데 리고 행차하옵셨거니 하였읍니다."

"응, 그렇게 알기가 쉽지. 너는 아니 오고, 내가 이렇게 나 오는데, 너의 어머니 혼자 집에서 지낼 수가 있느냐" 그리해 서 내 외가댁으로 가서 아주 있으라고 보냈더니 잘이나 있 는지 모르겠다.

"소인은 그런 줄은 모르옵고, 그 댁 근처에를 지나면서도 들어가보지를 아니했읍니다."

황가가 그제는 마음을 놓고,

"오냐, 설마 잘 있겠지. 이다음에 올라가보려므나."

하고 연희를 재촉하여 앞세우고 주인으로 오는데, 옥이가 뒤에 따라오며 나직한 소리로,

"서방님, 앞에 각시는 이가 서주사댁 작은아씨가 아닙니 까?"

"에, 요란스럽다. 누가 듣는다."

"아무도 없는데 누가 들어요?"

황가가 권주부를 보내고 방으로 들어와 옥에게 권주부를 따라가라 한다.

"그 의술이 미상불 맹랑치 않은걸. 이애, 옥아, 권주부 쫓 아가서 약을 주시거든 가지고 오너라."

"예, 갔다옵지요."

옥이가 대답을 하고 나아가니 황가가 또 쫓아 나아가더니,

"이애,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라."

"그 이야기는 여쭙겠읍니다마는, 약은 웬 것을 가져오라고 하십니까?"

"압다, 너는 그 의원의 말을 못 들었느냐" 아씨가 김가의 자식을 밴 모양이니 진작 약을 먹여 없애버려야 아니 옳으 냐?"

"그까짓 일이 그리 급하십니까" 몇 달 후에 낙태를 시켜도 고만이요 낳은 뒤에 죽여 없애도 그만이지요마는, 제일 김 의관의 아들 영록이가 우환이 아니오니까?"

"그는 네 말이 옳다마는 뱃속에 그놈의 씨를 그대로 두었 다는 아씨의 마음이 갈리어 또 무슨 일이 날지 모르겠구나."

"김의관의 아들만 없어지면 아씨 마음이 걸리지 않아 세상 없기로 관계가 무엇입니까?"

"대관정 그놈이 지금 어디 가 있느냐" 그놈을 꼭 붙잡아가 지고 오지를 아니하고."

"여쭐 것이니 들어보십시오. 김의관의 아들이 차에서 내리 는 것을 보고 붙잡고 인사를 청한즉, 성명을 변하여 시흥 오가라고 하옵기 처음에는 혹 잘못 알았나 하였다가, 아무 래도 의혹이 나기에 소인도 변성명을 하고 주인집으로 끌고 와 수일을 지내옵는데, 아무리 넘겨짚어 허실을 알려 해도 끝끝내 생작이 떼는 것을 보고 꼭 속기를 얼핏 같은 사람이 혹 있는 것을 잘못 보고 붙잡았거니 싶을 뿐이라, 가만히 눈치를 보니까 저 하는 양이 가라고 떼밀어도 아니 갈 듯하 여 단속을 좀 덜하고, 제 자력대로 내버려두었더니 고만 간 다 온다 말없이 살짝 도망을 하였읍니다. 그 도망한 것을 보고 그제야 소인이 되속은 줄을 깨닫고 사면수소문을 하온 즉, 도무지 자취가 없삽기에 필경 차를 타고 이리로 내려온 줄 아옵고 쫓아왔사오니 어서 바삐 찾아보아야 아니 옳습니 까?"

"허허, 그것 분하다. 그놈을 놓치지 말고 꼭 잡았더면 아주 내 후환을 없이할걸 너는 내 심복이니 말이지, 그놈이 계집 빼앗기는 것커녕, 제 아비를 내 손으로 죽인 줄을 알기 곧 하면 사생 결단하고 원수를 갚으려 할 것이니 큰 우환거리 가 아니냐?"

"그렇고 말고요. 서방님께서 어련히 통촉하셨을 바는 아니 옵지마는, 김의관을 죽이기까지 하신 것은 너무 과하신 일 이올시다. 그 자식 되어서 원수를 갚으려고 아니할 리가 있 읍니까?"

"오냐, 죽이기까지는 내가 과격한 일이지마는, 그자의 쫓아 온 것을 보고 일시 내 엄적할 욕심으로 그 지경을 하였으니 지금 와서 후회하면 소용 있느냐" 뒷일 방비나 잘해갈 것을 생각하여야지. 그래, 그놈이 이 항구로 왔기가 가려로구나?"

"분명히는 알 수 없읍니다마는 이리로 왔기가 십상팔구올 시다."

"그놈이 이곳에 왔을수록 아씨의 낙태를 시켜야만 하겠으 니, 얼핏 권주부약국에 가 약이나 가져오너라. 그 약을 먹여 후환부터 없애고 고놈의 종적을 수색하여 보자."

권주부는 의술 뿐 아니라 관상을 잘하는 터인데, 연희의 얼굴을 팔모로 뜯어보아도 남자가 아니오 여자요, 맥을 보 건대 다른 병은 없고 태맥이 분명한데 황가가 독약을 청구 하는 것을 보고 의심이 들기를, (아무리 그 얼굴을 보아도 여자요, 맥을 보건대 태맥이 확 실한데, 여자가 아니오 남자라는 것과 태맥이 아니라 체적 이 생김이라 하는 양을 짐작컨대, 황가 필경 남의 수절하는 과부를 통관하여 태기가 있으니까 탄로가 날까 보아 낙태를 시킬 계교인가 보다. 내가 바로 몰랐으면이어니와, 기위 반 짐작이라도 한 이상에 그런 악한 일을 할 까닭이 없다.) 하고 보내할 약을 마침 지어놓았다가 옥이를 내러주며 짐 짓 부탁하기를,

"이 약이 독한 약이니 태기있는 부인에게는 부디 쓰지 말 도록 하오."

"여려 말으십시오. 그대로 여쭙지요."

이때에 연희는 황가에게 붙잡혀 움치도 뛰도 모사고, 아니 아픈 배가 아프다 칭탁하고, 목전의 굽한 욕을 면하려는데, 권주부가 와서 맥을 보고 태맥이라는 소리에 그 그 고명함 을 은근히 탄복하였는데, 황가가 따라나가서 수군수군하고 저 약을 지어다 주는 것이 의심이 나서 저사하고 아니 먹으 려 한즉,

"어서 자시오. 이 약을 자시면 복통이 곧 그치리라 하는데, 왜 아니 자시려고 하오?"

"그까짓 의원이 무엇을 알아서 그 약을 먹으면 복통이 아 니 나요" 지껄이는 소리가 전판 허무맹랑한 걸요."

"맹랑은 공연히 맹랑해" 맥이나 바로 보았지, 이약을 태상 이라도 관계치 않고 태상 아니라도 관계치 않으니 잔소리 말고 어서 자시오. 어서 자시고 병이 쾌차 하여야 나와 혼 인을 하루바삐 아니하오?"

연희는 저사하고 아니 먹으려거니 황가는 기어이 먹이거려 니 무수 상지하다가 황가가 화를 버럭 내어 소리를 지른다.

"약을 아니 먹으려는 것을 본즉, 배가 아프지도 아니한 것 을 필경 꾀배앓이를 하여 나를 속이는 것인즉 먹기 싫거든 고만두오. 나도 나 할대로 할 터이니. 흥, 그까짓 얕은 꾀를 뉘 앞에서 쓰려고" 내가 어림없이 속고서 의원을 청해 온다 약을 지어 온다 하였군."

약그릇을 들어서 팽개치려다가 다시 턱 밑에다 들이대며,

"정녕 아니 먹을 터이요" 아주 한 마디를 하오."

연희가 가만히 생각을 한즉, (그 약을 아니 먹었다는 저놈에게 욕을 당장 못 면할 지경 이라 죽으나 사나 그 약을 제 소원대로 먹어 우선 피화를 하는 것이 옳다.) 하고 약을 받아 벌컥벌컥 한숨에 다 마셔버렸더라. 황가가 은근히 요행하게 여기기를, (옳지, 인제는 김가의 시를 없애게 되었다. 아마 조금 있으 면 배가 더 아프다고 야단을 하렷다. 핏덩이만 쏟거든 다시 보혈할 약을 쓰면 그만 나을 터이지.) 연희 역시 그 약을 사세가 급박하여 받아먹기는 하고 무슨 야단이 날줄 알고 은근히 근심을 하는데, 그 약이 들어가더 니 거북하던 배가 도리어 편안하고 아무 일이 없는지라 속 마음으로, (내가 아무 일이 없는 양을 저놈에게 보였다는, 저놈이 또 무슨 약을 지어올 터이니 엄살을 좀 톡톡히 하여 저놈의 정 신을 빼어놓으리라.) 하고 별안간에 두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자리에 못 붙고 엎드렸다 앉았다 야단치니, 황가가 외양으로 놀라는 체 하 며 속으로는 다행히 여겨, 본체만체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 와, 옥이와 영록이 찾을 의논을 한다.

"이애, 옥아, 인제는 낙태는 시켰다마는 그놈을 어떻게 하 면 잡겠느냐" 그놈을 잡아 없애야 내가 발을 뻗고 잠을 잘 터인데."

"가만히 계십시오. 소인이 지금 약 지어가지고 오다가 수상 스러운 것 하나를 보았읍니다."

"무엇을 보았단 말이냐?"

"소인이 분주히 저 건너 술집 문 앞을 지나오느라니까 웬 사람이 마당 앞에 섰다가 소인이 저만치 오는 것을 흘깃 보 더니, 아주 질색을 하여 몸을 피하는데, 복색이라든지 몸집 과 키가 김의관의 아들과 방붕하와요."

"그러면 쫓아 들어가보지, 그대로 왔단 말이냐?"

"그 생각이 있었읍니다마는, 약을 급히 가져오라고 하셨으 니까 지체할 길이 없사와 그대로 왔사옵고, 서방님께서 약 을 쓰시느라고 골몰하시니까 미처 여쭙지도 못하였읍니다."

"이애, 그놈이 거기 그저 있을까" 그 술집이 어디 쯤이냐"

우리 같이 가보자."

옥이가 손으로 건넌 산 모롱이를 가리키며,

"저기 저 건너 술집이올시다."

옥이는 앞을 서고 황가는 뒤를 서서 그 주막을 찾아가서 황가는 멀찌기 서서 망을 보고, 옥이는 바로 대문을 흔들며 주인을 찾는다.

"주인, 주인."

"누구요" 술 자시러 온 양반이요" 우리 집에 술이 떨어졌 소. 다른 데로나 가보시오."

"술은 잇으나 없으나 이리 좀 나오시오."

"예, 나가오. 누구란 말인구?"

하며 주인 노옹이 나와 대문을 열더니,

"예, 추워, 일기도 맵기도 하다. 웬 양반인데 이 추위에 찾 아 계시오?"

"들어가십시다."

"뉘 댁이시오?"

"예, 예, 차차 아실 터이니 들어가십시다."

"들어앉으실 데가 없소이다. 술도 떨어지고 나무도 없어서 건넌방은 폐방을 하구요. 안방에는 딸이 근친을 와서 있읍 니다."

옥이가 그 소리에 더럭 잡아 젖힌다. 주인이 대들어 옥이 의 팔뚝을 잡아 나꾸며,

"이 양반이 미쳤나, 실성을 했나" 남의 집 내정 돌입을 함 부로 하게."

"내정 돌입이라니, 술집에 좀 들어오는 것이 내정돌입이야"

댁이 술장사를 않고 부인아가씨 사처방을 꾸며놓았나 보구 려."

"여보, 술장사하는 사람은 이렇게 성명도 없단 말이요" 술 도 없다는데 남의 집 안방 문은 왜 열러 들으시오?"

"술도 낯 가려 파나 보구려. 번연히 방안에 어떤 사람이 들 어앉아 술을 먹는 것을 아는데 이따위 수작이 다 무엇이야!"

"내 집에 술군이 있는 것을 댁이 똑똑히 알으오?"

"아무렴, 알지."

"그럴 터이면 댁 생각대로 찾아놓으시오. 만일 술군을 못 찾아놓으면 큰 봉변하오리다."

"그리하오. 못 찾아놓기는, 번연히 내 눈으로 본 것을 못 찾아놓아!"

하고 다시 방문을 잡아 젖뜨리고 신발 신은 채 뛰어 들어 가 미친놈 모양으로 이리 휘휘 저리 휘휘 둘러보는데, 주인 노옹은 기가 막혀 문밖에 그대로 서서,

"저놈이 어서 난 놈이야" 오, 이놈 못 찾아만 놓아보아라, 내 손에 다리가 부러지고야 말 터이니."

주인의 마누라와 주인의 딸은, 불의에 풍파를 만나 어쩔 줄을 모르고 이 구석 저 구석에 우뚝우뚝 돌아서서,

"에그, 이게 웬 야단일까" 별 미친 사람이 다 많으이. 우리 집에서 누가 술을 먹는다고 남의 집 젊은 여편네가 있는 방 에를 함부로 뛰어들어와 야단법석일까"

"오늘 벌써 둘째 괴상한 꼴을 보네."

옥이가 그제는 제 생각에도 안되었든지 얼른 도로 나가 주 인 노옹 앞에 가 머리를 조아 복복 사죄하는 말이라.

"노인장 용서하여 줍시오. 제가 실수가 많소이다. 그러나 지금 아낙에서 하시는 말씀을 잠깐 듣자온즉, 괴상한 꼴을 둘째 보았다 하시니, 하나는 제가 디려니와 하나는 또 누구 가 있길래 그렇게 말씀을 하시옵니까?"

주인 노옹이 좋은 주먹으로 옥이 눈에 불이 번쩍 나체 볼 치를 올리려다가, 나이 많은 탓으로 용서성이 많아서 들었 던 주먹을 도로 움치며,

"여보, 이 양반, 댁이 실진을 했는지 술이 취했는지 모르겠 소마는, 그게 무슨 난장 맞을 행세요" 내가 십분 용서하여 고만두는 것이니 잔소리 말고 어서가오."

"고만두는 것이 다 무엇이요" 좀 단단히 물어보오. 무슨 곡 절로 남의 집 안방에를 함부로 뛰어들어왔나?"

"압다, 요란스럽소. 개천 나무래 무엇하겠소" 소경된 우리 가 그르지. 우리가 주막거리에 나아와 술장사하는 것이 불 찰인즉 고만둡시다. 이 양반 어서 가오. 십분 용서하는 것이 니."

옥이가 짓궂게도 주인 앞에 가서 앉으며,

"주인장께서 이처럼 널리 용서하시니 감사무지하오이다. 그 러나 아까도 말씀하였거니와, 아낙에서 괴상한 꼴을 둘째 보셨다 말씀을 하시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니까?"

"그것은 알아 무엇하려오" 그놈을 댁이 알으시오?"

"어떤 놈 말씀이오니까?"

"오늘 신수가 사나와서 댁같이 미친 짓하는 사람이 아까도 한 놈이 왔더라오."

"그놈이 누구인데 어떻게 미친 짓을 하더란 말씀이요?"

"누가 아오 그놈이 누구인지" 우리 세 식구가 막 밥상을 받고 앉았으려니까, 별안간에 웬 놈이 문을 박차고 뛰어 들 어오더니, 저 윗 방 독 뒤에 가 숨어 앉았길래 깜짝놀라서 네가 웬 놈이냐 물은즉, 그놈이 손짓을 홰홰 내저으며 제발 덕분 떠들지 말고 사람을 살려달라기에, 웬 사람인데 무슨 곡절이 있느냐 물은즉, 제 말에 어떤 자와 전량 거래에 시 비가 되어 뭇매질이 났는데, 그자는 우악하고 저는 약하여 잡히기곧 하면 죽어도 죽고 사정을 보아달라 하기에 경상이 가긍하여 r대로 두고 문밖에를 나아가 두루 살펴보아도 아 무도 쫓아오는 자가 없길래, 다시 들어와 저를 보고 밖에 아무도 없으니 어서 갈 데로 가라 한즉, 그 사람이 그제야 독 뒤서 기어나아와 고맙다고 인사 한마디 할 여부없이 꼬 리가 빠지게 도망하는 것을 보았으니 그 아니 괴상하오?"

옥이가 혀를 홰홰 내두르며,

"저런 놈 보아. 저놈이 어디로 도망을 하였을까?"

"왜 노형이 그놈을 짐작하시나 보구려?"

"짐작이라는 것이 다 무엇이요" 그 놈이 아주 큰 도둑놈이 라오. 그놈이 간 밤에 내 주인에 들어와 우리 행장 수천 원 을 도둑하여가지고 도망하는 것을, 내가 이때까지 꼭 뒤를 밟아다니다가 아까 대문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잡으려 다가, 그놈에게는 필경 흉기가 있을 터이요, 또 나 혼자 잘 못 덤볐다가 도리어 해를 당할까 염려가 되어 보지 못한 체 하고서 그놈의 마음을 눅이고 지금 잡으러 왔는데, 설마 그 놈이 그 동안에 어디 갔으랴 하였더니 벌써 도망을 하였구 려."

"예, 그놈이 그런 놈이야요" 누가 그런 줄이야 알았습니까"

그러면 주인더러 미리 통기를 해주시지요. 꼭 붙잡았다 드 리게."

"주인이 그놈과 부동이 되어쓴지 아니되었는지 어찌 알아 서 통기를 해요" 여보, 나는 댁이 말씀하는 것을 들으니까 이실직고가 아닌 듯싶어, 내가 내정 돌입한 것을 가이없이 생각하오마는, 만일 이놈을 진시 잡지 못하면 주인에게 후 환이 없지 아니하리다."

주인 깜짝놀라서,

"에그, 그리해서 어찌하게요" 주인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 리셔요" 당신이 아무쪼록 잘 말씀하셔서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시기만 바라오."

"그는 어찌되었던지 당장 이놈을 잡아야만 하겠으니, 여러 말 할 것 없이 그놈 간 곳을 어서 가르쳐 주시오."

"그놈 간 곳을 알 수가 있읍니까" 그놈이 저 앞길로 간 지 가 얼마 동안 아니되오니 바삐만 쫓으면 얼마 머리 아니 가 서 잡으실 듯하오이다."

"어느 길 말이요" 항구로 올라가는 길이요, 정거장으로 가 는 길이요?"

"아니오, 저 건너 산비탈로 돌아가는 길 아니 뵙니까" 그 길로만 급히 쫓으시면 십 리가 채 못되어 길 아래 외딴 주 막 하나이 있을 것이니 그 주막에 가 수색을 하여보시면 갈 데 없이 잡으오리다."

이때 황가는 오래 기다려도 옥이의 동정이 없으니 궁금증 이 생겨서 그 집 문밖에 와서 기침을 카악카악 하니 옥이가 분주히 나아오며,

"진작 왔더면 꼭 붙잡을 걸. 이놈이 벌써 달아났읍니다그 려."

"그놈이 어느 틈에 도망을 했을 수가 잇나" 필경 주인과 부동이 되어 얻다가 숨긴게지. 이애, 우리 들어가 주인을 조 련질하여 보자."

"아니올시다. 주인이 진실하여 속일 사람이 아니올시다."

"허허, 그것 분하다. 그놈을 꼭 잡았더면 좋은 것을."

"걱정 마십시오. 그놈이 저 길로 갔답니다. 급히 만 쫓으면 잡을 터이올시다."

"간 지가 얼마나 된다느냐?"

"얼마 아니되었답니다. 어서 쫓아가십시다."

"오냐, 어서 가자. 토막나무 끈 자리지, 제가 가면 얼마나 갔겠느냐?"

하고 황황히 장바 두 길이나 가다가 황가가 딱 멈춰서며,

"이애, 아니된 일 한 가지가 있다."

"무슨 일이오니까?"

"우리가 이렇게 쫓아가 그놈을 얼핏 잡으면 좋으려니와, 그 렇지 못하고 점점 멀리 번져 가는 지경이면, 속담에 모이의 둘 잡으러 가다가 집의 돝 잃기로, 아시를 주인에게 단단히 맡기든지 데리고 함께 가든지 해야 아니하느냐?"

"옳지, 참 그렇습니다. 주인에게 맡기시다니오" 아무리 단 단히 맡기기로 아씨께서 어디로만 가시면, 그 죄로 주인을 죽입니까 어찌합니까" 매사는 튼튼한 것이 제일이올시다. 소 인은 먼저 쫓아갈 것이니 서방님께서는 그 집으로 가셔서 아씨를 모시고 뒤를 따라 오십시오."

"오냐, 그 수밖에 없다. 나는 아씨를 데리고 곧 갈 것이니 너는 그놈을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쫓아가거라."

"예서 얼마 아니 가면 외딴 주막이 있다는데, 거기서 수색 을 하여보아 그놈을 잡으면 더 여쭐 말씀없고, 만일 거기 없으면 새향 장터까지 가서 기다리올 것이니 그리 아십시 오."

"그리해라. 그놈 잡고 못 잡는 것은 너만 믿는다."

황가가 주인집으로 와서 연희더러, 어서 나서라 같이 가자 하니 연희는 어쩐 곡절을 모르고 복통을 칭탁하며 얼른 나 서지를 아니하려 하니, 황가가 더욱 심조증이 나서,

"여보, 여간 아프더라도 좀 참고 나와 같이 갑시다. 예는 의약이 변변치도 못하고 불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즉 평양으로 가면 몸 편히 잘 조섭할 곳이 있으니 잔소리 말고 어서 갑시다."

"아무리 그러해도 복통이 더 심하여 촌보를 떼어놓을 수강 없으니, 수일간 동정을 보아 가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정 그러면 타고 가지. 예서 천연세월하고 있을 수가 있 소?"

하더니, 주인을 불러 인력거 한 채를 얻어 태워 앞세우니, 연희가 얼마쯤은 못 가겠다 앙탈을 하다가 가만히 생각한 즉, (저놈의 억지에 배기지를 못하겠는 중 평양으로 간다하니, 그리로 가면 남편의 소식을 탐지하여 보겠다.) 실심하고 못이기는 체 그 인력거를 타고 길을 떠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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韩国诗人兼导演沈熏
沈熏永久的浅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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